보험료 지원으로 끝나지 않는 제조사·사용자·보험사의 첫 거래 위험분담 구조

정부가 신기술을 첫 제품으로 인정해도 구매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대형 설비가 고장 나 생산라인이 멈추거나, 신소재가 장기간 사용 뒤 결함을 일으키고, 산업용 소프트웨어가 공정을 중단시키면 손실은 구매가격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구매담당자에게는 '검증된 외산 제품을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중국은 이 마지막 문턱을 첫 중대기술장비 보험보상(首台 (套) 重大技术装备保险补偿)과 첫 적용 신소재 보험보상(首批次新材料保险补偿)으로 낮춰 왔다. 제조사가 보험에 가입하고 정부가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며, 보험회사가 제품 품질·책임 위험을 인수한다. 지방정부는 첫 상용 산업용 소프트웨어까지 유사한 보상체계에 넣기도 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첫 제품 보험은 기술기업에 현금을 주는 제도가 아니라, 처음 구매하는 고객이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제조사·보험사·정부가 나눠 갖게 하는 시장형 산업정책이다.
신제품은 고장 가능성이 높아서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실 범위와 책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중대장비는 수리비뿐만 아니라 공장 중단과 납기지역은, 제3자 손해를 일으킬 수 있다. 신소재는 제품 불량과 리콜, 완제품 수명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는 데이터 훼손, 제어오류와 사이버보안 사고를 낳을 수 있다.
기존 제조물책임보험만으로는 이런 위험을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 시장실적이 없어 보험료를 계산하기 어렵고, 보험사가 기술을 평가할 정보도 부족하다. 구매기업은 보험이 없으면 도입을 꺼리고, 보험사는 사용사례가 없으면 인수를 꺼리는 또 다른 순환에 빠진다.
중국은 인정목록과 보험 보상을 결합해 이 문제를 풀었다. 정부가 지원 대상 기술과 제품을 먼저 선별하면 보험사는 일정 범위 기술·정책 신호를 활용할 수 있고, 제조사는 보험료 부담을 낮추며, 구매자는 사고 발생 시 보상받을 수 있다.
2015년 시작된 중국 첫 중대기술장비 보험 보상은 제조기업이 종합보험에 가입하는 구조다. 2019년 개선안은 구매·사용기업을 공동피보험자 또는 보험금 수익자로 포함하고, 품질보증과 제품책임을 함께 담도록 했다. 단순히 제조사 자산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 손실을 보호하려는 설계다.
중앙재정은 실제 보험료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고, 지원 기간은 원칙적으로 최대 3년으로 설정했다. 제조사가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게 한 것은 품질 책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보험료 전액을 내면 제조사와 보험사 위험평가가 느슨해질 수 있다.
2024년 이후 제도는 기업이 제품 특성에 맞춰 보험 종류와 가입 기간, 수량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였다. 보험회사는 '손익균형과 소폭 이익'을 원칙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고, 사고·하자 데이터를 축적해 이후 요율과 상품을 개선한다.
첫 적용 신소재도 비슷하다. 국가 목록에 포함된 신소재를 최초로 사용한 제품에서 품질·책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험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중앙재정이 실제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한다. 소재는 장비보다 결함 원인을 찾기 어렵고 완제품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사용자와 소재 기업 공동위험 관리가 중요하다.
보험이 산업정책으로 중요한 이유는 돈을 지급하기 전에 위험을 가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제품 설계, 시험성적서, 품질관리, 제조공정, 고객 사용환경, 유지보수와 과거 사고를 검토한다. 정부 목록에 들어갔다고 자동으로 보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보험은 기술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다. 면책사유, 자기부담금, 보상한도와 사용자 의무를 계약에 명시한다. 제조사가 설계변경이나 핵심부품 변경을 알리지 않거나, 사용자가 정해진 운용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보상이 제한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정보는 금융에도 쓰인다. 은행과 투자자는 보험 가입 여부, 보험사 위험평가와 사고 데이터를 통해 제품 양산·판매 위험을 판단할 수 있다. 보험은 첫 구매를 보호하는 동시에 시장이 기술을 학습하는 데이터 인프라가 된다.
중앙제도는 중대장비와 신소재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지방정부는 소프트웨어와 지역 전략산업까지 범위를 넓힌다. 산둥성은 첫 중대기술장비·첫 적용 신소재·첫 상용 소프트웨어를 묶은 보험보상 체계를 운용해 기업별 보험료 지원 한도를 최대 500만위안(약 73만6000달러)로 설정했다.
지역별 확장은 산업구조에 맞는 위험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 지역은 차량용 부품과 장비, 화학 지역은 신소재, 디지털 제조지역은 산업용 소프트웨어와 제어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 첫 제품 보험이 기업 유치와 공급망 국산화 수단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지방제도가 많아지면 보험 조건과 인정목록이 달라지고, 한 지역에서 인정받은 제품이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전국시장과 지역산업 정책 사이의 조정이 필요하다.
첫 제품 보험은 파일럿 검증·시험인증·첫 제품 인정과 연결될 때 효과가 난다. 연구팀은 파일럿 플랫폼에서 생산성과 수율을 확인하고, 시험기관은 성능과 안전을 측정하며, 정부는 첫 제품 목록에 올린다. 보험사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위험을 인수하고, 구매기업은 조건부로 도입한다. 사용 결과는 다음 보험료율과 제품개선에 반영된다.
따라서 보험 목적은 '사고가 나도 괜찮다'는 신호가 아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떤 범위 책임을 부담하는지를 사전에 정해 구매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보험이 품질보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보증이 실패했을 때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첫째는 역선택이다. 품질이 낮은 기업일수록 보험과 보조금을 더 원할 수 있다. 인정목록과 보험심사가 형식화되면 부실 제품이 정책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둘째는 도덕적 해이다. 보험료 대부분을 정부가 내고 손실을 보험사가 보상하면 제조사와 사용자가 품질·운용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자기부담금과 성실의무, 반복사고 시 지원 제외가 필요하다.
셋째는 원인 규명이다. 장비·소재·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생산라인에서는 사고가 제품결함, 설치, 운용, 유지보수 중 어디서 발생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독립 시험기관과 사고조사, 표준화된 운용기록이 필수다.
넷째는 보험사 기술 역량이다. 신기술을 평가할 엔지니어와 데이터가 부족하면 보험사는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거나 형식적 상품만 만들 수 있다. 정부 보험료 지원이 보험사 자체 평가역량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정책 지속성이다. 지원 기간이 끝난 뒤에도 기업이 보험을 유지하고 고객이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종료 후 보험료와 손해율, 반복구매를 공개해야 정책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
보험 가입 자체는 제품 신뢰를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결함으로 볼지, 제조사와 사용자 과실을 어떻게 나눌지, 손실액을 어떻게 산정할지가 더 중요하다. 중대장비 생산중단 손실, 신소재 결함으로 인한 완제품 폐기, 산업용 소프트웨어 장애로 발생한 데이터·영업 손실은 일반 재산보험보다 원인과 책임 관계가 복잡하다.
따라서 보험사는 단독으로 위험을 심사하기 어렵다. 시험기관 성적서, 파일럿 운용데이터, 제조사 품질관리체계, 사용자 설치·운영 조건, 유지보수 계약을 함께 본다. 보험료 보조는 이 평가비용을 낮추지만, 위험을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보상사례가 축적될수록 어떤 기술·공정·운영조건에서 사고가 발생하는지가 데이터가 되고, 다음 제품 보험료와 조달기준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험제도의 핵심 성과는 가입 건수보다 손해율과 분쟁처리 시간, 사고 이후 개선 조치, 보험 종료 뒤 민간보험 지속 여부다. 정부 보조가 끝나자 보험사가 상품을 중단한다면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손실 데이터가 축적돼 보험료가 안정되고 구매자가 자발적으로 가입한다면 위험 분담 인프라가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법인을 둔 한국 장비·소재·소프트웨어 기업도 개별 지역 첫 제품 인정과 보험료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외국인 투자기업 동등대우 원칙과 별개로, 제품 현지 연구개발·생산, 독자 지식재산권, 인정목록, 보험사·사용자 계약요건이 사업마다 다르다. 한국 본사의 글로벌 보험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중국 보험증권과 중복되는지, 사고 데이터와 기술자료를 어느 범위까지 제출해야 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중국 고객이 공동피보험자나 수익자가 되는 구조에서는 보험금 지급이 곧 납품대금과 하자책임 협상에 영향을 준다. 계약서에는 사고통지, 현장조사, 원인분석, 교체·수리, 보험금과 손해배상 관계를 명확히 넣어야 한다. 보험료 보조만 보고 저가로 첫 납품을 했다가 장기 하자책임과 소스코드·공정자료 제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한국 금융권에도 기회가 있다. 중국에서 검증된 한국계 장비·소재 기업의 해외 납품을 대상으로 수출보험, 성능보증, 매출채권금융을 연결할 수 있다. 중국 보험지원은 단지 경쟁제도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현지 첫 고객 확보와 제3국 확장을 뒷받침하는 금융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도 혁신제품 공공조달, 기술보증, 정책보험과 제조물책임보험이 있다. 그러나 신기술의 첫 적용에서 발생하는 생산중단·성능미달·재설치 비용을 구매기관과 제조사, 보험사가 나누는 제도는 분야별로 흩어져 있다.
정부는 반도체 장비·로봇·신소재·산업용 소프트웨어처럼 첫 구매위험이 큰 분야에 조건부 보험·보증 모델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파일럿 검증과 시험인증을 통과한 제품에 한해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고, 구매기업 자기 부담과 제조사 품질 책임을 유지해야 한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첫 구매 담당자가 합리적 절차를 지켰다면 결과가 실패해도 과도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면책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 신기술을 도입할 때 성능 기준과 사고 책임, 데이터 공유, 보험 조건을 계약에 넣어야 한다.
금융권은 보험 가입 자체보다 보장범위와 면책, 손해율을 봐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기술이전 이후 시험·사고분석과 개선에 참여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보험을 마케팅 도구로 쓰기보다 제품책임과 고객 손실을 원가에 반영해야 한다.
중국의 첫 제품 보험에서 배울 것은 정부가 손실을 대신 떠안는 방식이 아니다. 첫 거래 불확실성을 계약과 보험, 데이터로 분해해 누구도 혼자 책임지지 않게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은 혁신제품을 더 많이 지정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 사용하는 고객이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책임구조까지 만들 것인가.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