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의 보완대체의학(CAM)부터 인도네시아의 국민 전통약제 '자무(JAMU)',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아프리카의 전통의학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지금 자연 유래 천연물 소재와 전통의학의 가능성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장이 활짝 열리고 있는 지금, 우리 한의학(K-Medicine)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이 바로 '한약자원의 표준 원료 생산과 가공 기준의 확립'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프랜차이즈 커피 맛이 전 세계 어디서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원두의 재배와 선별, 로스팅까지 이어지는 엄격한 품질 관리, 즉 '표준화' 덕분이다.
그렇다면 질병 치료와 예방, 건강관리에 오랫동안 활용되어 온 한약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전통 한약재는 자연에서 유래한 생물자원이기 때문에 재배 환경, 기후, 토양에 따라 유효 성분의 함량이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활용 가치가 높은 약재라 하더라도, 사용할 때마다 품질과 효과가 달라진다면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품질 일관성과 재현 가능성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한다. 동일한 이름의 한약재라 하더라도 생산 지역이나 재배 조건에 따라 성분 차이가 크다면 국제 유통과 산업화 과정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표준화는 연구 정확성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과 국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필자는 수년 전 '우수한약재 생산을 위한 표준재배 가공 기준 확립의 중요성'을 발표하며, 전통 한약재도 현대적 '원료의약품(API)'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는 이를 위해 한약 품질 신뢰의 출발점이 되는 표준 원물 생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형태가 비슷해 혼용되기 쉬운 약재들을 유전자와 이화학적 방법으로 정확히 가려내는 '기원식물 감별', 약재 내부의 유효 성분 지도를 그려내는 '성분 프로파일링', 중금속이나 잔류 농약 등으로부터 안전성을 확보하는 '유해물질 관리'까지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는 '표준 원물 생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 첨단 바이오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재배 환경을 정밀하게 관리함으로써 약재 성분을 최적화하는 '스마트-허벌로믹스(Smart-Herbalomics)' 연구도 중요하다. 수확 후 품질 특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가공·포제 프로토콜' 확립은 한약의 데이터 신뢰성을 완성하는 주춧돌이 된다.
이러한 정밀한 기준이 확립될 때, 비로소 우리 한약은 단순한 농업 생산물을 넘어 세계 제약 시장의 핵심 원료 성분이자 글로벌 의약품 개발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제약·건강기능식품 산업은 원료의 품질관리 수준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한다. 원료의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 추적 가능한 관리체계를 갖추어야만 국제 시장 진출과 글로벌 협력이 가능하다.
국민이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는 한약, 의료인이 임상 현장에서 신뢰하고 처방할 수 있는 한약의 출발점은 결국 '표준화된 원료'에 있다. 우리 전통 한의학의 가치가 과학적 근거와 품질관리 체계를 바탕으로 글로벌 표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표준화 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과 지원이 더욱 확대돼야 할 시점이다.
이제 표준화는 선택이 아닌 K한약의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이며,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강영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ymkang@kiom.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