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 공급망 재편과 기술안보 강화 과정에서 중국 기업 의존도를 줄이면서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새로운 협력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독일 최대 통신기업인 도이치텔레콤은 중국 기업이 빠진 자리를 한국이 충분히 메울 수 있다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유럽(EU) 공동 연구개발(R&D)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은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2026 한·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2026)'에서 '한·EU 산업기술 협력 포럼'을 개최했다.
산기평은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기술 R&D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정부 산업기술 R&D 예산의 약 10%를 관리하는 산기평은 현재 274개의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독일과의 협력이 가장 활발하다.
윤홍서 도이치텔레콤 선임 프로젝트매니저(PM)는 산기평과의 국제공동연구 수행 경험을 전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AI와 그린테크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서 한국에는 분명한 기회가 오고 있다”며 “도이치텔레콤을 포함한 관계사들은 중국산 장비를 철거했고, 유럽 연구 컨소시엄에서도 사실상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한국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한국이 이미 기술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았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을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유럽에서는 한국 기업의 기술력뿐 아니라 빠른 의사결정과 높은 책임감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공동연구가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 현지 데이터와 테스트베드에 접근할 수 있고, 실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외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다”며 “이는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큰 경쟁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협력 사례도 소개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과는 노후 화력발전소 데이터를 활용한 AI 기반 이상 탐지와 로봇 설비 점검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현재는 DHL 그룹과 함께 한국 로봇기업이 참여하는 물류 자동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단순 물류 로봇으로 시작했던 과제도 최근 피지컬 AI 흐름에 맞춰 양팔을 활용하는 형태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툴루즈(프랑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