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실증·사업화·매출로”···기업 성장 중심 데이터 기반 지원체계 전환

생성형 AI를 넘어 피지컬 AI, AI 반도체, 디지털헬스케어, 미래 모빌리티까지. 인공지능(AI)은 이제 특정 산업의 기술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기업을 얼마나 많이 유치했느냐보다 AI를 중심으로 산업과 산업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다.
성남은 국내 대표 AI 혁신도시다. 판교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AI와 반도체, 바이오, 게임·콘텐츠 기업이 집적돼 있고, 성남하이테크밸리와 정자동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오리역 제4테크노밸리까지 첨단산업 벨트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AI 기반 스마트도시와 피지컬 AI 관련 국가사업을 잇따라 유치하며 대한민국 AI 실증 거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이주연 성남산업진흥원장은 이러한 산업적 강점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성남산업진흥원을 단순한 기업 지원기관이 아니라 AI 시대 기업 성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혁신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이주연 원장을 만나 AI 시대 성남의 경쟁력과 산업정책의 방향을 들어봤다.
대담=소성렬 콘텐츠기획부 국장
-취임 후 가장 먼저 추진한 과제는 무엇인가.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혁신이 아니라 '신뢰'였다. 공공기관은 기업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래서 윤리경영과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채용과 계약, 지원사업 전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성과관리 방식도 바꾸려 한다.
그동안은 사업을 얼마나 많이 추진했는지가 성과였다면 앞으로는 지원받은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성과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매출과 투자유치, 수출, 고용, 특허, 생존율 등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정책에 반영하는 데이터 기반 경영체계를 구축하겠다. 궁극적으로는 '진흥원이 무엇을 했는가'보다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로 평가받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AI 대전환의 심장'을 강조했다. 성남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많은 도시가 AI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성남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AI 기업뿐 아니라 반도체와 바이오, 게임·콘텐츠 기업이 함께 모여 있고 연구기관과 투자 생태계까지 하나의 도시 안에 집적돼 있다.
AI는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을 연결하는 기반 기술이다. 성남은 AI를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실증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이미 갖추고 있다. 최근 확보한 스마트도시 특화단지와 피지컬 AI 자율실험 기반 구축사업 등도 이러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성남산업진흥원은 이 같은 국가사업을 기업 성장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겠다.
-판교 3.0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판교 3.0은 공간을 넓히는 개념이 아니라 기능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판교테크노밸리와 성남하이테크밸리, 정자동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위례 글로벌 연구거점, 오리역 제4테크노밸리를 하나의 산업축으로 연결해야 한다.
기업은 창업부터 연구개발, 실증, 투자, 글로벌 진출까지 성남 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성남산업진흥원 역시 사업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업과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투자자와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대하겠다.

-AI·반도체를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 기업들은 어떤 변화를 체감하게 되나.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기술보다 사업화다. 연구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실증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투자와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테스트베드를 확대하고 AI와 반도체 기업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연구개발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 무엇보다 정책은 현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을 직접 찾아가 애로를 듣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책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성장 전략도 중요한 과제다.
▲창업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사다리를 만드는 일이다. 초기에는 창업공간과 사업화 자금이 필요하고 성장단계에서는 투자와 판로, 글로벌 진출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창업부터 스케일업, 해외 진출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
판교 유니콘펀드와 창업공간, 테스트베드, 오픈이노베이션을 연계해 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이 성남에서 창업하고 성남에서 성장하며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글로벌 진출 전략도 기존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다고 글로벌 시장이 열리는 시대는 지났다. 중요한 것은 현지 기업과 투자자, 대학, 연구기관, 유통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다. 국가마다 산업 특성이 다르다. 미국은 AI와 반도체, 바이오가 강하고, 중동은 스마트시티와 미래 모빌리티, 동남아는 게임과 콘텐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에 맞춰 국가별 맞춤형 진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성남산업진흥원은 코트라와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글로벌 투자기관, 해외 산업 네트워크와 협력해 시장 분석부터 파트너 발굴, 투자유치,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AI 시대에는 실증과 사업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좋은 기술만으로는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을 검증할 실증 환경과 초기 시장이다. 최근 성남시가 확보한 스마트도시 특화단지와 피지컬 AI 자율실험 기반 구축사업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다.
기업들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투자와 사업화를 더욱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성남산업진흥원은 국가사업과 지역 기업을 긴밀히 연결해 연구개발이 논문으로 끝나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 매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취임 후 가장 새롭게 주목한 산업으로 방산을 꼽았다.
▲성남을 AI와 게임, 바이오의 도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장을 둘러보면서 방산이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을 비롯한 국내 대표 방산기업과 100여 개 관련 기업이 성남에 집적돼 있다.
최근에는 국방 AI 관련 기관도 들어오면서 AI와 반도체, 방산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방산 역시 이제는 AI와 로봇, 드론, 자율체계, 시스템반도체가 결합하는 첨단산업이다. 성남은 이러한 산업이 함께 모여 있는 국내 유일의 도시인 만큼 AI와 방산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AI와 방산을 어떻게 연결할 계획인가.
▲미래 국방의 핵심 경쟁력은 AI다. 지능형 감시체계와 무인체계, 자율무기체계, 데이터 분석 등 거의 모든 분야가 AI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남에는 AI 소프트웨어 기업과 시스템반도체 기업, 방산기업이 모두 모여 있다.
이들의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방 AI 국가 연구개발 과제를 적극 발굴하고 기업 간 공동 프로젝트를 확대해 AI 기술이 방산으로, 방산의 현장 경험이 다시 AI 기술 고도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
-바이오와 기후테크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AI는 바이오 산업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신약개발과 의료영상 분석, 디지털헬스케어, 의료로봇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성남은 정자동 바이오헬스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병원과 바이오기업, ICT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피지컬 AI 기반 의료로봇 기술통합센터 구축사업까지 추진되면 의료 AI 산업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후테크도 중요한 미래 산업이다. 탄소중립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제조, 탄소저감 기술 등 기후테크 산업도 적극 육성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 나가겠다.
-성남은 국내 최대 게임·콘텐츠 산업 집적지이기도 하다.
▲게임과 콘텐츠 산업은 생성형 AI의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받고 있다. 그래픽과 영상 제작, 번역, 이용자 분석 등 AI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소 콘텐츠 기업들도 AI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앞으로는 제작 지원을 넘어 AI 기반 콘텐츠 제작 환경과 글로벌 플랫폼 연계를 강화해 성남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 나갈 계획이다.
-최근 '혁신 생태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의미를 설명한다면.
▲좋은 기업이 많다고 해서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투자기관, 대기업, 스타트업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할 때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만들어진다. 성남은 AI와 반도체, 바이오, 게임·콘텐츠, 방산 등 다양한 산업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제는 각각의 역량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KAIST와 ETRI, KETI 등 국내 최고 연구기관과 협력을 확대해 AI와 시스템반도체, 피지컬 AI, 디지털헬스케어,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를 적극 추진하려 한다. 연구기관은 기업의 현장 수요를 반영하고, 기업은 연구성과를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문가 그룹도 새롭게 운영한다고 밝혔다.
▲기존 자문위원회는 정책을 논의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실행 중심 전문가 그룹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게임·콘텐츠, 방산, 기후테크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가 연구개발 과제 기획부터 기술 검증, 사업화, 투자유치, 글로벌 진출까지 기업과 함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
또 대기업 출신 전문가와 교수, 연구기관 연구원, 투자 전문가 등을 폭넓게 참여시켜 기업들이 필요한 순간 즉시 전문가와 연결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성남산업진흥원은 사람과 기술, 기업과 시장을 연결하는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성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가장 다양하게 공존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대기업은 기술과 자본,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중소기업은 혁신성과 실행력이 뛰어나다. 이들이 협력할 때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만들어진다.
성남산업진흥원은 공동 연구개발과 오픈이노베이션, 공급망 연계, 지역기업 판로 확대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발굴해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해질수록 지역경제도 함께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니어 전문가를 활용한 기업 지원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성남에는 산업 현장을 이끌어 온 우수한 전문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판교와 분당에는 대기업과 글로벌기업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경험은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산이다. 기술개발과 생산혁신, 조직 운영, 투자유치, 해외 진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니어 전문가와 기업을 연결해 경험이 다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원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기관 운영에서는 데이터 기반 경영과 서비스 혁신을 강조했다.
▲공공기관도 데이터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사업 건수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투자, 고용, 수출, 특허 등 객관적인 성과가 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 성과가 높은 사업은 확대하고 효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히 개선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 조직도 기업을 기다리는 기관이 아니라 먼저 현장을 찾아가는 서비스 혁신기관으로 바꾸려 한다. 기업 만족도가 곧 기관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남 기업인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업의 성장이 곧 도시의 성장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이 모이며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다. 산업정책은 결국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성남은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혁신도시다. 이제는 AI와 반도체, 바이오, 게임·콘텐츠, 방산, 기후테크를 연결하는 글로벌 혁신도시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 성남산업진흥원도 기업과 기업, 기업과 연구기관, 기업과 투자자, 기업과 세계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겠다.
기업이 가장 먼저 찾는 기관, 가장 신뢰하는 기관, 그리고 기업 성장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기관. 그것이 성남산업진흥원이 지향하는 미래다. 대한민국 AI 대전환의 중심에서 성남이 세계적인 혁신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과 함께 뛰겠다.
◇이주연 원장은…
이주연 원장은 SK C&C와 포스코ICT에서 27년간 ICT와 디지털 전환 사업을 이끌며 산업 현장을 경험한 ICT 전문가다. 충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아주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인하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옴부즈만과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4차산업혁명위원장, 강원특별자치도 기업호민관 등을 역임하며 기업 규제 개선과 현장 애로 해소에 힘써왔다.
2026년 성남산업진흥원장 취임 이후에는 '대한민국 AI 대전환의 심장, 성남'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AI·반도체·바이오·게임·콘텐츠·방산·기후테크를 연계한 혁신 생태계 구축, 데이터 기반 경영,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글로벌 진출 플랫폼 구축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