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와 은행의 대응

Photo Image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경영부 팀장

지난주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이 공개되면서 각 업권은 법정공시에 따른 리스크를 점검하고 향후 공시 운영 방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국내 은행권은 자율공시 기간 동안 지속가능성 공시를 꾸준히 고도화하며 대응 역량을 축적해 왔다. 이러한 경험을 고려하면 법정공시가 시행되더라도 단기적인 제도 대응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의 직접배출(Scope1)과 간접배출(Scope2)은 제조업에 비해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AI) 활용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데이터센터 신설 주기가 예상보다 짧아질 경우 배출량 추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존 탄소중립 경로의 일부 수정 요인이 될 수 있다. 재조정된 경로를 사업보고서에 반영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확보를 통한 감축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다만 미래 설비투자의 유동성은 성장산업 전반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인 만큼 현재로서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범주로 보인다.

기타 간접배출(Scope3)에 대한 법정공시는 3년 유예됐지만, 은행 지속가능성 공시의 핵심은 금융배출량이다. 금융배출량은 금융공급을 통해 거래 고객이 배출하는 간접배출량으로 은행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공시해 왔다. 따라서 제도 시행 자체가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유예기간에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한 자율공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핵심 과제는 공시 여부가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이다. 현재 금융배출량 산정은 산업 평균이나 추정계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의 신뢰성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거래 기업의 실제 측정 데이터를 확대해 추정 중심의 산출체계를 실측 기반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관계의 정렬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은행은 거래 기업의 실제 배출 데이터를 확보할수록 금융배출량 공시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대기업 공급망에 속한 협력기업들은 Scope3 자료 제출 요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자체 배출량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은행이 제공하는 탄소관리 지원은 협력기업의 공급망 대응 역량을 높이고,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는 다시 은행의 금융배출량 공시를 고도화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여기에 전환금융까지 도입된다면 기업의 배출량 관리와 감축 활동은 새로운 금융 수요를 창출하고, 은행은 이를 지속가능한 금융기회로 연결할 수 있다. 대기업은 더욱 정교한 Scope3 데이터를 확보하고 국가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실효성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함께 앞당길 수 있다. 은행과 대기업, 협력업체, 국가 모두가 같은 방향의 편익을 얻는 드문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제시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동반성장 형태의 금융·비금융 종합지원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 동반성장협력 대출이 협력업체에 저리 자금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배출량 측정과 탄소중립 목표 수립 등 ESG 컨설팅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전환금융의 성격도 함께 갖추고 있어 한국형 전환금융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의 공급망 관리 역량, 은행의 금융과 ESG 컨설팅, 국가의 정책과 공공 데이터를 연계한다면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노력이 보다 유기적인 협력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선순환이 항상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지원과 달리 컨설팅은 전문인력이 제한적이어서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기업대출의 상당 부분이 중소기업에 집중된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제공하기 어렵다. 업종과 배출 특성, 기업 규모를 고려한 우선순위 설정과 전략적 자원 배분이 필요하며 국가와 산업계, 금융권의 집단지성이 요구된다.

게임이론에서 탄소중립은 각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면 협력과 균형이 쉽게 무너지는 대표적인 난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지속가능성 공시와 금융배출량 관리, 공급망 탄소관리, 전환금융이 만나는 영역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유인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다.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를 단순한 규제비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다자간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경영부 팀장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