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현장에서 좋은 판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판단보다 먼저 신호가 있고, 신호보다 먼저 그 신호가 놓인 자리가 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큰 모델, 더 빠른 분석을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 데이터는 정말 필요한 곳에서 나온 것인가. 설비가 실제로 변하는 위치와 순간을 제대로 붙잡은 것인가. 사람이 보기 편한 값이 아니라, 현장이 보내는 신호를 정직하게 들은 것인가.
그동안 산업계는 센서가 많아지는 시대를 말해왔다. 그러나 현장에 들어가 보면 정작 사고와 고장의 징후가 먼저 나타나는 곳은 여전히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원을 연결하기 어렵고, 배터리를 갈 수 없고, 통신선을 뽑기 어렵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일수록 설비의 변화는 먼저 시작된다. 고전압 설비 안쪽, 회전체 주변, 고온·극저온 환경, 강한 진동이 반복되는 부품, 인프라 깊숙한 곳이 그렇다. 산업 현장의 사각지대는 데이터가 부족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감각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감각을 놓지 못해서 생기기도 한다.
무전원·무선 센서와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센서는 이 문제를 향한 오래된 답이었다. 목적은 단순히 배터리를 없애거나 전선을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배터리와 배선 때문에 포기했던 위치에 신호의 길을 여는 일이었다. 배터리로도 충분한 곳에서는 에너지 하베스팅의 설득력이 약할 수 있다. 그러나 배터리가 죽고, 배선이 어렵고,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에서 경쟁자는 다른 센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측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나 필요한 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 모니터링에서 대부분의 데이터는 정상 데이터다. 설비는 대부분 정상적으로 돌고, 온도와 전류는 대부분 허용 범위 안에 있으며, 진동과 소리도 대부분 익숙한 흐름 안에 있다. 이 모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저장하고, 분석하는 구조는 언젠가 비용과 속도의 벽을 만난다. 앞으로의 센서는 많이 말하는 쪽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정확히 말하는 쪽으로 진화해야 한다. 센서는 말을 줄여야 시장이 된다. 침묵하라는 뜻이 아니다. 정상의 긴 시간을 견디다가, 변화가 생긴 순간 더 의미 있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별한 센서 하나로 시장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현장은 반복성과 유지보수성을 요구한다. 특정 설비 한 대에서 잘 작동하는 기술이 여러 공장과 여러 설비에서 다시 쓰이려면, 설치와 연결과 운용의 구조가 필요하다. 센서플랫폼은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센서 안의 기능만 플랫폼화하는 것이 아니라, 센서 밖의 세계를 플랫폼화하는 일이다. 기존 PLC, HMI, 서버, 데이터베이스, 작업자의 운전 방식과 이어질 때 비로소 현장의 신호는 값이 아니라 자산이 된다.
디지털리트로핏도 같은 흐름 위에 있었다. 제조업의 디지털전환은 새 공장과 새 설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실제 돈은 이미 설치되어 돌아가는 오래된 기계 위에서 움직인다.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라도 품질과 납기와 에너지 비용을 좌우한다면, 그 설비는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할 대상이다. 기계를 수리하고 배선을 만지고 제어 구조를 들여다보는 순간은 단순한 복구의 시간이 아니다. 그때 신호를 꺼내고, 데이터를 남기고, 상태를 읽을 수 있게 만들면 낡은 설비는 다시 감각을 갖기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이제 선진 제조 현장에서도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 되고 있다.
물론 감각을 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어디에 심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사람이 관리하기 쉬운 위치와 원인을 구분하기 좋은 위치는 다를 수 있다. 제어반에서 보기 편한 전류값과, 실제 작용점 가까이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용접 순간의 전류 변화율, 공구와 소재가 만나는 지점의 힘과 진동, 베어링 가까이에서 먼저 나타나는 미세한 흔들림은 멀리 떨어진 데이터보다 더 정직할 때가 있다. 판단이 흔들릴 때 모델만 탓할 수는 없다. 때로 문제는 머리가 아니라 감각의 위치와 시간축에 있다.
이 지점에서 정직한 감각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정직한 감각은 보기 좋은 데이터가 아니라, 설비가 실제로 변하는 자리와 순간을 왜곡하지 않고 붙잡는 일이다.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이고, 오래 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측정값으로만 남는다면 여전히 센서의 영역에 머문다. 필요한 순간 판단할 시간을 만들어낼 때, 감각은 말단지능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산업 지능은 거대한 중앙 판단만으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중앙은 넓은 흐름과 장기 추세, 여러 설비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반면 말단은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먼저 느끼고, 먼저 구분하고, 필요한 순간 반응을 준비해야 한다. 중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이 더 깊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말단이 먼저 신호를 정리하고 현장의 의미를 붙잡아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필자가 디지털반사신경망(DRN)으로 설명해 온 방향도 여기에 있다.
코아칩스가 무전원·무선 센서에서 출발해 에너지 하베스팅, 센서플랫폼, 디지털리트로핏, 고속열차 CBM, 그리고 디지털반사신경망으로 기술의 범위를 넓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밑에는 같은 질문이 놓여 있었다. 어떻게 더 많이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필요한 곳에서 제대로 느끼고 필요한 순간에 의미 있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센서를 부품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산업 지능의 말단을 담당하는 솔루션으로 진화시킬 것인가.
미래의 제조 현장은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더 정확한 위치, 더 적절한 순간, 더 적은 말, 더 빠른 1차 판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때 센서는 더 이상 부품이 아니라 감각의 기초가 되고, 감각은 말단지능이 되며, 말단지능은 중앙과 함께 산업 현장의 새로운 신경계를 이룰 것이다.
이런 방향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전부터 현장에서 그 감각의 자리를 함께 찾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흐름은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온 동료와 고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각지대의 신호를 붙잡아 온 엔지니어들의 수많은 시간이 쌓여 만든 결과였다.
오재근 | 코아칩스 대표이사
국내 최초 SAW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자로, 센서·에너지 하베스팅·산업용 무선 계측 분야를 25년 이상 연구해왔다. '표면탄성파(SAW)를 이용한 에너지 포집형 무전원·무선 센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AW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 및 극한 환경용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등을 개발·제품화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원,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코아칩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원·무선 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및 IIoT 센서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트로핏, 온디바이스 AI를 연결한 제조 DX의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