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이 되면 방송사들은 저마다 화려한 개표방송 경쟁에 나선다. 첨단 그래픽과 대규모 제작 인력을 투입한 선거방송은 어느새 하나의 이벤트가 됐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시·군·구의원 선거는 이러한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과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다. 학교 주변의 안전 문제, 지역 교통체계, 도시 개발과 환경 정책 등 주민들이 체감하는 대부분의 정책은 지방정부가 결정한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지역 후보자의 정책과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국 단위 방송은 중앙정치와 광역 이슈에 집중하며,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역시 전국적 화제성에 따라 움직인다. 시·군·구 단위 후보자와 지역 현안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역 민주주의와 정보 공급 사이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해 온 매체가 바로 케이블TV 지역채널이다.
지역채널은 전국 방송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기초자치단체 선거와 지역 현안을 보도하며 주민과 지방정치를 연결하는 풀뿌리 공론장 역할을 수행해 왔다. 후보자 토론회 개최, 지역 현안 검증, 지방의회 활동 보도, 생활밀착형 정책 소개 등은 지역채널이기에 가능한 영역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지역채널은 단순한 방송매체를 넘어 지역사회의 소통 플랫폼으로 기능해 왔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채널의 경영 기반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OTT 등의 확산으로 케이블TV 산업은 지난 10여년간 가입자 감소와 광고시장 축소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아왔다. 과거 독점적 시장 지위에서 확보한 수익을 기반으로 공적 책무를 수행하던 '교차보조 모델'은 사실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수익성 악화는 곧 지역 보도와 지역 콘텐츠 제작 역량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SO 사업자들은 지역채널 운영을 지속하며 선거방송과 지역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전략을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공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지역채널은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전국 방송이 다루기 어려운 시·군·구 단위 후보자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한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했으며, 군소 후보자들에게도 발언 기회를 제공했다. 일부 지역채널은 인공지능(AI) 기반 뉴스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고 숏폼 콘텐츠를 활용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 지역소멸 극복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소멸 문제는 단순히 인구 감소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지역의 이야기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간이 사라질 때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화되면서도 나타난다. 지역채널은 주민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사회적 인프라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지역 미디어가 위축될수록 지역의 의제는 공론장에서 사라지고, 주민들의 참여와 감시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정책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지역채널에 공적 의무와 규제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상응하는 지원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지역채널을 실질적인 지역방송으로 인정하는 법적 지위 부여를 비롯해 지역방송지원특별법 적용 대상 확대, 방송통신발전기금 인하, 지역 콘텐츠 제작 지원 확대 등 현실적이고 형평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지만 지역 민주주의는 선거 당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토론하며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공론장이 있을 때 비로소 지방자치는 살아 움직인다. 화려한 중앙정치의 조명 뒤에서 묵묵히 동네 선거를 기록하고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전해 온 지역채널의 가치를 다시 돌아볼 때다.
박성순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방송영상 전공 교수 sspark@seoulart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