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 OTT 승부처는 '데이터'…K-OTT, 체급부터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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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빅데이터 분석이 없다면, 기업은 눈멀고 귀 먼 채 웹을 헤매는 고속도로 위 사슴과 같다.”

미국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 제프리 A. 무어는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대부분 산업에 해당하는 얘기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산업에선 더욱 그러하다.

많은 사람이 OTT 산업을 콘텐츠 또는 지식재산권(IP) 경쟁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더 치열한 '데이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는 콘텐츠, 나아가 플랫폼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무기라 할 수 있다.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콘텐츠 제작과 투자, 편성 전략 전반에 직접 활용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인공지능(AI) 시대에 콘텐츠 경쟁력은 데이터 축적 규모에서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미디어 고속도로에서 경쟁 업체들이 질주하는 동안, 계속 헤맬 수밖에 없으니까.

과거 방송 중심의 시장에선 데이터의 중요도가 떨어졌다. 시청률 정도만 봐도 충분했다. 하지만 OTT 시대엔 데이터의 가치가 매우 높다. 이용자의 콘텐츠 감상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TV 앞에선 방송사의 편성에 따라 수동적으로 작품을 시청하게 된다. 하지만 OTT에 접속하면 능동적으로 다양한 행위를 이어간다. 플랫폼 구독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결제-검색-클릭-시청-이벤트 참여 등을 진행한다. 이에 따라 완주율, 시청UV(Unique Visitor·순 방문자 수), 1인당 시청 시간 등 다양한 지표들을 도출할 수 있게 됐다. 이용자가 시즌 전체를 봤는지, 어느 장면에서 돌려 봤는지, 어느 시점에 이탈했는지를 알 수 있는 핵심 데이터다.

이 모든 신호를 종합해 OTT 사업자는 주요 결정을 내린다. 콘텐츠의 캐스팅 또는 공개 방식을 결정하고, 러닝 타임이나 편집 템포를 조정하기도 한다. 토종 OTT 티빙이 예능 '환승연애'의 회차별 반응과 몰입도를 살펴보며, 공개 방식을 주 1회 또는 주 2회로 그때그때 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친애하는 X'를 첫날에 1화부터 4화까지 일괄 공개해 초반 몰입도를 높인 것도, 2024년 한국프로야구(KBO) 중계권 확보 후 야구 오리지널을 잇달아 제작해 야구 팬들의 체류 시간을 늘린 것도 티빙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한 콘텐츠 전략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한국 OTT가 가진 데이터는 글로벌 OTT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전 세계에 3억여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의 데이터양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매일 수백억건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관련 데이터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10년 동안 K콘텐츠를 시청한 국내외 이용자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고 분석하고 있다.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의 약 80%가 K콘텐츠를 한 편 이상 본 것으로 나타났는데, 결국 이 방대한 데이터가 넷플릭스 성공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토종 OTT의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계속 지연되면서, 데이터를 더 이상 늘리지 못하고 있다. 두 플랫폼은 합병을 통해 최대 규모의 K콘텐츠 데이터를 통합하고,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합병을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국내 OTT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의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선 합병으로 체급 자체를 키워, 반드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진 가져본 적 없는 글로벌 이용자의 K콘텐츠 데이터를 대거 확보하고 활용해야 한다.

막대한 양의 국내외 데이터를 확보해 IP 경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토종 OTT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좁은 내수 시장에서 각개전투를 해야만 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탄탄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외 대규모 데이터 확보-알고리즘 고도화-체류 시간 증가 및 이탈 방지-콘텐츠 흥행-신규 구독자 유입-데이터 추가 확보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토종 OTT에 강력한 '플라이휠(Flywheel·회전 기계 장치)'이 돼줄 것으로 보인다. 플라이휠은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언급한 용어로, 처음엔 힘들어도 제대로 된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나면 그 이후부턴 자체적으로 잘 돌아간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나아가 추진력이 생겨 가속도도 붙게 되고, 폭발적인 성장까지 이루게 된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곧 데이터 플라이휠을 만드는 초석이 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합병 시계를 하루빨리 다시 돌려야 한다. AI 시대에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미디어 고속도로에서 언제까지나 멈춰있을 순 없으니.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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