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균형발전 전략이다.
2005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조성계획' 추진 이후 10개 혁신도시에 150여 개 이상의 공공기관이 이전했으며, 정주인구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일정 부분 기여해 왔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전 지역의 경제 지표가 상승하는 경향도 관측된다. 그러나 물리적 이전이 모든 산업에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1년 연구에서 공공기관 이전 이후 지식기반 산업 성장의 한계와 구조적 제약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산업 구조와 작동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배치는 오히려 효율성과 혁신 역량을 저하시킬 수 있다.
핵심은 '산업별 특성에 대한 고려'다. 제조·조선 산업은 입지 연계성이 필수적이며, 해양·물류 산업은 항만 접근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해양수산부 및 관련 기관을 부산·목포 등과 연계한 사례는 이러한 산업 논리에 부합하는 대표적 예다. 반면 디자인 산업은 성격이 다르다. 디자인은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소비자 경험, 트렌드, 미디어, 문화적 맥락이 결합된 창의산업의 핵심 영역이다. OECD와 UNESCO가 정의하는 창의산업에서도 디자인은 도시 기반 집적 경향이 강한 산업으로 분류된다. 인재와 정보, 네트워크가 밀집된 환경에서 경쟁력이 강화되는 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의 '2025 디자인산업통계'에 따르면, 국내 디자인 사업체의 상당수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수도권 쏠림' 현상이라기보다 산업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글로벌 도시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며, OECD는 2021년 분석에서 이를 '집적 효과(agglomeration effect)'로 설명한다. 산업 경쟁력은 분산보다는 정보와 인재 교류의 속도에 의해 좌우되며, 교육기관 역시 도심 기반의 실무 협력 구조 속에서 운영된다. 무리한 분산은 트렌드 반영 지연과 협업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된다. 창의산업에서는 데이터의 양보다 '피드백의 밀도와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이 플랫폼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 이론에서도 강조된다. 디자인 산업은 소비자 반응과 트렌드 변화가 실시간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갖기 때문에, 물리적 분산은 오히려 학습과 의사결정의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디자인 관련 행정 기능의 지방 이전은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지역에는 일정 수준의 디자인 지원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대구경북·대전·강원·전북 등 5개 지역디자인진흥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연계된 체계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전국 20여 개 테크노파크 산하에는 디자인지원센터가 구축되어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제품·시각·포장 디자인, 시제품 제작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인천·대구 등에서는 관련 지원이 이미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기관은 지역 디자인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균형발전의 본질은 '분산'이 아니라 '기능의 최적 배치'에 있다. 수도권에는 글로벌 전략과 네트워크 중심 기능을 두고, 지역은 로컬·관광 디자인 등 지역 자산과 결합된 특화 영역을 강화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다. 전주 한옥 디자인, 강릉 푸드 패키징 사례처럼 지역 고유 자산과 결합할 때 비로소 경쟁력이 창출된다. 일률적 분산은 비효율을 낳는다. 산업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균형발전은 단순한 물리적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기준으로 한 기능 배치의 문제다.

한국의 디자인산업은 약 21조 5천억 원 규모로 29만 8천여 명이 종사하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산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디자인산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지방 이전 문제는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매우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 연합회장 이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