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AI전략노트] 〈25〉기획하는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왔다

혼자 만든 게임이 17일 만에 13억원을 벌었습니다. 코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게 말로 설명해서 게임을 만들었고, 출시 17일 만에 매출 100만달러를 넘겼습니다. 팀도 없었고, 투자도 없었습니다. 아이디어와 대화만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미국의 한 사무직 여성은 회사 경비처리가 번거로워서 마이크로소프트 파워앱스의 AI에게 자기 상황을 말로 설명했습니다. 2시간 뒤, 그 여성의 업무 흐름에 맞춘 경비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이 나왔습니다. 개발자에게 의뢰한 적도, 코드를 한 줄 읽은 적도 없습니다.

사이버보안 회사 이센타이어(eSentire)에서는 수석 전문가가 5시간 걸리던 위협 분석을 AI 에이전트에게 넘겼습니다. 7분 만에 끝났습니다. 정확도는 시니어 전문가의 95%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로켓 공학자 출신 창업자가 소 목에 거는 GPS 목걸이를 만들었습니다. 목장주가 스마트폰 지도에 선 하나를 그으면 그것이 울타리가 됩니다. 철조망도, 목양견도 필요 없습니다. 40만마리의 소가 이 목걸이를 차고 있고, 피터 틸이 기업가치를 2조8000억원으로 매겼습니다. 소의 행동 데이터 수십만 건으로 훈련된 머신러닝 모델이 건강 이상을 조기에 잡아냅니다. 축산업이 데이터 산업이 된 겁니다.

스레드에서 화제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팔순 모바일 초대장을 만들어달라고. 그 사람은 클로드에게 5분 동안 말을 걸었습니다. 이름, 날짜, 장소, 분위기를 한국어로 설명했을 뿐인데 모바일 초대장이 완성됐고, 카카오톡으로 바로 보냈습니다. 비용은 0원. 업체에 맡기면 수십만원에 며칠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베트남어-한국어, 러시아어-한국어 이중언어 교재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 이 작업 전부를 클로드 코드라는 에이전트 기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재 구성, 번역, 편집, 레이아웃까지. 출판사도 번역가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디어와 경험이 있었고, AI가 그것을 실행해줬습니다.

공통점이 보입니다. 이 사례들의 주인공은 개발자가 아닙니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불편을 느끼고, 해결 방법을 상상하고, AI에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에이전틱 AI 시대에 진짜 경쟁력은 코딩 실력이 아니라 기획력입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 누구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아는 것.

기업에서는 반복 업무의 자동화와 의사결정 속도가 바뀝니다. 행정기관에서는 민원 응대와 데이터 분석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포르투갈 정부는 이미 2300개 이상의 공공 서비스에 AI 어시스턴트를 붙였습니다. 개인은 자기 머릿속 아이디어를 당일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꺼낼 수 있게 됩니다.

에이전틱 AI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개인도. 늦게 시작할수록 따라잡기 어려워지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 위에 쌓이는 경험과 데이터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잘 쓰는 소수의 천재가 아닙니다. 누구나 에이전틱 AI를 도구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준비입니다. 초중고 교실에서 코딩 문법 대신 문제 정의와 기획을 가르치는 커리큘럼, 공무원과 직장인이 실무에서 AI 에이전트를 직접 써볼 수 있는 실습형 연수 과정,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자기 업종에 맞는 AI 활용법을 배울 수 있는 공공 프로그램. 이런 보편적 학습 인프라가 깔려야 합니다. AI를 만드는 능력은 소수에게 집중되더라도, AI로 기획하는 능력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기술이 격차가 아니라 기회가 되는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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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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