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인사이트]K제조업의 재도약, 생태계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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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이노메트리 대표

제조업의 공동화는 산업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영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보다 안보 논리가 앞서는 이러한 '기술안보' 시대에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제조업의 역사는 곧 국가 성장사와 맞물려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우리는 제조업의 주도권이 거대 자본과 생산력을 앞세운 중국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 제조업을 경시하고 서비스와 금융에 집중했던 일부 선진국들이 공급망 위기 앞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인 점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제조업은 더 이상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오늘날 국제 정세는 순수한 경제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지정학과 안보가 산업의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제조 역량이 곧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긴장 고조 역시 에너지 가격을 흔들며 제조 원가 전반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제조업의 강건함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폴란드에 수출된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계약 직후 단기간 내 초도 물량 인도를 시작한 사례는 한국이 갖춘 유기적인 소부장 생태계와 납기 대응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생산 능력을 넘어, 산업 전반이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에서 비롯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략보다 제조의 기본에 대한 재정의다. 핵심은 품질(Q), 원가(C), 납기(D)이며, 이 세 축은 모두 소부장에서 출발한다.

첫째, 품질 경쟁력은 초정밀 기술에서 비롯된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의 불량률이 평균 43% 감소한 사례에서 보듯, 단순한 품질 관리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AI)과 소부장 기술을 결합해 현장의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누구도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수준의 초격차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원가 경쟁력은 공정과 에너지 효율에서 결정된다. 에너지 불확실성이 커지는 환경에서 고효율 제조 공정과 탄소 대응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마트공장 도입을 통해 평균 15% 수준의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은 기술 혁신이 곧장 기업의 이익으로 직결됨을 증명한다.

셋째, 납기 경쟁력은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에서 나온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당시 우리 소부장 산업은 핵심 품목 의존도를 낮추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어떤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 공급망을 구축하고, 설계부터 물류까지 전 과정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상생'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대기업과 중소 소부장 기업이 '공동 운명체'로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단순한 공급처가 아닌 기술 파트너로 인식하고, 중소기업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산업 전반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과거 제조업이 '더 많이, 더 빠르게' 만드는 '양적 팽창'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의 제조업은 '어떤 위기에도 끊기지 않는 강인함'을 겨루는 '질적 승부'의 시대다. 대기업의 자본과 중소기업의 기술이 맞물릴 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제조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단단하다면 외부 환경의 변화는 위협이 아니라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소부장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에 그치는 논의보다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힘이며, 그 출발점은 소부장 생태계의 지속적 강화에 있다.

이갑수 이노메트리 대표 gslee@innomet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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