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별로 분산된 평생교육 정책을 통합하기 위한 '평생학습기본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됐다. 인공지능(AI) 확산과 인구 구조 변화로 전 생애 학습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과 예산 조정 기능을 갖춘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평생교육연대 출범식 및 평생학습기본법 개정 국회 정책 포럼'이 열렸다.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등 관련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대한민국평생교육연대 주관으로 평생학습기본법의 입법 방향과 제도적 기반 구축 방안이 논의됐다.
평생교육은 헌법상 국가 의무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지침은 부족하다. 급변하는 현장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 속에 평생학습기본법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평생 교육 체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재 직업능력개발법, 문화예술교육법, 환경교육법 등 개별 영역별 법률은 존재하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기본법은 부재하다. 1999년 제정된 평생교육법 역시 변화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평생교육 정책은 교육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교육,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등 여러 부처가 각자 사업을 맡아 추진하는 구조다.
양병찬 공주대 교수는 “부처별 사업이 분절적으로 추진되면서 예산이 분산되고 중복 사업이 발생한다”며 “국가 차원의 총괄적 관점이 부재해 정책 추진 속도와 효율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의 유사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지역 평생교육 현장 체계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말했다.
평생학습기본법은 교육 서비스 확대를 넘어 분산된 정책과 예산을 통합적으로 기획·조정·평가하는 '마스터 법'의 성격을 가진다. 국무총리 소속 '국가평생학습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해 부처 간 사업을 조율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친 시행계획을 각 부처 예산 편성에 반영하도록 명문화해 정책 실행력을 담보한다. 또한 국가평생학습지표에 따른 추진 실적을 매년 평가·공표하고 이를 다음 연도 예산에 환류함으로써 데이터 기반 성과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양 교수는 “법안의 핵심은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기능 부여”라며 “위원회를 중심으로 종합계획 수립과 사업 조정, 성과 평가를 일원화해 국가 평생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 부처 간 협력, 평가 체계 등이 명확해지고 정책 실행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대중 대학성인학습자연구교류협의회장(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은 “평생학습기본법은 교육 지원을 넘어, 모든 국민이 생애 전 주기에 걸쳐 학습할 권리를 보장받고 그 결과를 공정하게 인정받는 '학습권의 보편화'를 실현하는 법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선진국은 평생교육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독일의 '시민대학(Volkshochschule)'은 대표적 사례다.
양 교수는 “독일은 시민대학을 중심으로 직업교육, 시민교육, 문화예술교육을 단일 플랫폼에서 통합 운영하며 예산과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며 “우리나라도 부처별로 파편화된 정책 구조를 탈피해 유기적 평생학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디지털 전환과 인구 구조 변화라는 복합적 환경 속에서 평생학습을 국가 핵심 전략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정책 통합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AI 시대를 맞아 성인의 디지털·AI 역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전국 평생교육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마련돼야 모든 국민의 지속적인 AI 역량 축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이나 장애인 등 대상별로 분절된 정책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기본법 차원의 조정 기능이 중요하다. 특정 집단을 분리하기보다 통합 체계 안에서 맞춤형 지원을 설계할 때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AI와 산업전환 환경으로 직무의 소멸과 재편이 빠르게 이어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20대 후반부터 성인의 학습 역량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OECD 최저 수준인 성인의 고학력 저역량 상황은 성인이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인프라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며 평생학습은 복지정책이자 인적자본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한 사립대 평생교육 관계자는 “여러 부처와 지자체가 유사한 평생교육 사업을 각각 운영하면서 예산이 중복 투입되고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현상은 사실”이라며 “중앙 총괄 관리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효율적인 예산 및 사업 배분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평생교육이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예산 확대와 실행력 있는 정책 추진이 병행돼야 한다”며 “대학을 포함한 평생교육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로 작동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 구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