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정보기술(IT) 서비스 시장의 계약 관행인 '인건비 중심 산정 체계'가 인공지능(AI) 기술의 혁신으로 전환기를 맞을 전망이다. 개발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AI 기술이 대형 프로젝트 현장에 실제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기술 도입에 따른 생산성 증가분과 그에 따른 사업비 감소를 계약 조건에 명시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특정 기업의 계약 방식을 넘어 향후 IT 산업계 전반에서 AI 과업에 대한 명확한 대가 산정 기준 마련이 핵심 과제로 부상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현재 금융권을 중심으로 노후화한 시스템을 교체하는 현대화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KB국민은행 사례처럼 코볼 언어를 자바로 변환하는 'C2J' 작업은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막대한 인건비와 시간이 소요되던 이 분야에 AI가 본격 도입되면서 당장 유사한 계약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발주처가 AI를 통한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인력 투입 중심 사업 모델로는 적정 사업비를 산정하거나 사업을 수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간 국내 IT 서비스 시장을 지배해온 '맨먼스(공수)' 방식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개발 인원수와 기간을 곱해 사업비를 산출하는 노동 집약적 모델이다. 소프트웨어의 가치나 결과물의 품질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느 기간 동안 현장에 상주했느냐'를 비용의 척도로 삼아왔다.
그러나 AI가 수개월이 걸리던 코딩 작업을 단 며칠 만에 끝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투입 공수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급격한 기술 변화 속에서 과거의 산정 방식을 고수할 경우 시장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업 수행자인 IT서비스 기업들 역시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AI 활용 방안을 제안서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응해 IT서비스 업계의 사업 추진 전략과 제안 관행도 대대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단순히 인력을 확보해 적기에 공급하는 '인력 공급자' 역할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AI 플랫폼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 엔지니어를 전진 배치하는 구조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제안서 작성에서도 인력 투입 현황판 위주의 기술에서 탈피해, AI 솔루션을 통한 공기 단축과 코드 품질 향상 등 '기술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증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기술료를 요구하는 가치 중심의 제안 모델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활용 가치에 대한 발주처와 수행사 간의 입장차를 좁히는 것도 주요 과제다. AI 도입으로 작업 시간이 단축되었을 때 이를 단순히 인건비 삭감 요인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술 도입에 따른 효율성 가치로 인정해 수행사의 이익이나 기술료로 보전해 줄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시급하다. AI 솔루션 도입과 운용에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인건비만 삭감된다면, 국내 IT 산업의 기술 고도화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기술의 효용과 결과물의 품질을 정량화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숙경 카이스트 교수는 “단순히 몇 명이 얼마 동안 일했느냐가 아니라,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해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비용 산정 체계가 정립돼야 한다”면서 “발주처, 수행업계가 참여하는 협의 채널 등을 통해 충분한 협의를 거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