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은 강하게 만들면 깨지기 쉽고, 유연하게 만들면 약해진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딜레마에 포스텍(POSTECH) 연구진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포스텍은 김형섭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합금 내부에 '헤테로' 미세 구조를 만드는 전략으로 금속의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항공우주와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는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필수다. 이러한 요구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재가 바로 '고엔트로피 합금'이다. 일반 합금이 철이나 알루미늄처럼 한 가지 금속을 중심으로 다른 원소를 소량 섞는 방식이라면, '고엔트로피 합금'은 여러 금속 원소를 거의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다. 다양한 원소가 뒤섞이면서 독특한 결정 구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강도, 내구성, 내식성에서 기존 합금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고엔트로피 합금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석출 강화'라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금속 내부에 작은 입자들을 고르게 분산시켜 외부 힘이 가해졌을 때 쉽게 변형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미끄러운 바닥에 작은 돌멩이를 흩어 놓으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금속 강도를 높일수록 잘 늘어나지 못하는 '강도-연성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기존의 '균일 강화' 접근에서 벗어나 '구조적 대비'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금속 전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경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을 공존시키는 '헤테로'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연구팀은 고엔트로피 합금 내부에서 형성되는 두 가지 석출 방식에 주목했다. 결정 내부에 고르게 형성되는 '연속 석출'과, 결정 경계 주변에서 비교적 거칠게 형성되는 '불연속 석출'이다. 연구팀은 열처리와 기계적 가공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해 이 두 구조의 비율을 다르게 설계한 합금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기계적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불연속 석출이 더 많이 형성된 헤테로 합금에서 '항복 강도'(더 큰 힘을 견디는 능력)와 '변형 경화 능력'(변형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이 모두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경한 영역인 불연속 석출 영역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단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이 함께 존재하면, 힘을 받을 때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추가적인 저항이 형성되고, 금속은 변형될수록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헤테로 변형 강화효과'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영역 간의 변형 차이가 추가적인 가공경화를 유도, 기존 합금보다 더 높은 강도와 우수한 변형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제조 설비나 복잡한 공정 없이 이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열처리·기계 가공 공정만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어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이 높다. 김형섭 교수는 “차세대 고강도 구조용 합금이 필요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논문 제1저자인 이재흥 씨는 한국연구재단 2025년도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중 하나인 '머터리얼즈 리서치 레터스(Materials Research Letter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