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은 물론 사업자들에게 대출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금융 지원 수단이다. 경기 침체나 매출 급감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현실적인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정책금융과 보증 확대는 사업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며 앞으로도 유지되고 강화돼야 한다. 대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은 1000조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차주 역시 수백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은 단순한 자금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핀테크 기업들이 빠른 정산과 매출 선지급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현금 유입 속도는 과거보다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카드 매출이나 플랫폼 거래 대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많은 소상공인이 외부 금융에 의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매출 대금의 유입 속도보다 자금 흐름의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구조에 있다. 매출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단기 운전자금을 위해 반복적으로 대출을 이용하는 사업자가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빠른 정산 서비스는 대부분 비용과 조건을 동반한다. 정산 시점을 앞당기는 대신 추가 수수료가 발생하거나 향후 정산액에서 일정 비율이 공제된다. 업종, 매출 규모, 거래 안정성에 따라 이용 가능 여부가 달라지고 특정 결제 유형에만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지급 한도가 설정되거나 환불 위험에 대비해 일부 금액이 보류되는 구조도 일반적이다. 현금 유입은 빨라지지만 비용 부담과 유동성 제약이 동시에 발생한다. 모든 사업자가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범용적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생산적 금융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자금을 더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금이 원활하게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소상공인에게 중요한 것은 매출 규모 못지않게 매출이 안정적으로 현금화되고 예측 가능한 자금 흐름을 형성하는지 여부다. 월 매출이 크더라도 정산 주기가 길고 변동성이 크면 유동성 위험은 높아진다. 반대로 매출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정산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금융 의존도는 낮아진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개인사업자 데이터 활용 확대와 대안 신용평가 체계 구축 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는 담보나 재무제표 중심의 평가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실제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과 결제 정보가 사업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카드 매출, 계좌 입출금, 플랫폼 판매 기록 등은 영업 활동을 실시간에 가깝게 반영하는 데이터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자금 공급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급결제 인프라가 고도화될수록 이러한 데이터의 가치도 커진다. 금융기관은 보다 정확한 위험 평가를 수행할 수 있고 자금 지원의 효율성과 건전성도 함께 개선된다. 데이터 기반 금융은 자금이 필요한 곳으로 합리적으로 흐르도록 만드는 핵심 수단이다. 특히 개인사업자 데이터 통합과 표준화가 이루어질 경우 담보 중심 금융에서 거래 기반 금융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실시간 또는 준실시간 정산 기술이 결합되면 자금 흐름의 안정성은 한층 강화된다. 현재의 결제 시스템은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다양한 정산 방식과 중개 구조가 혼재돼 있어 자금 유입 시점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일부 거래는 당일 정산되지만 다른 거래는 며칠 후 입금되는 구조에서는 사업자가 전체 현금 흐름을 정확히 관리하기 어렵다. 즉시 또는 단기간 내 정산이 보편화되면 사업자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보다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진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비용과 위험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러한 변화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투자 대상이나 기존 화폐의 대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시간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정산 인프라로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은 은행 영업시간이나 국가 간 결제망의 제약 없이 거의 즉시 이전이 가능하며 국경 간 소액 거래에서는 기존 송금 방식보다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디지털 화폐와 토큰화가 결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준비자산의 건전성, 상환 가능성, 규제 준수 등 신뢰 기반이 확보돼야 실제 지급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결국 소상공인 금융은 대출이라는 핵심 축 위에 지급결제 인프라,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 실시간 정산 기술이 결합될 때 안정적인 자금 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대출은 위기 대응뿐 아니라 적시에 공급될 경우 예방 기능도 수행하지만 안정적인 자금 흐름은 위기 발생 가능성 자체를 낮추는 보다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정책적으로도 과제는 분명하다. 결제·정산 데이터의 표준화와 안전한 활용 체계 구축, 개인정보 보호와 금융 활용 간 균형을 고려한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 새로운 결제 수단에 대한 명확한 규제 틀 마련, 그리고 민간 혁신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데이터 기반 금융과 디지털 결제 인프라 정책은 이러한 과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소상공인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길은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하는 데만 있지 않다. 매출이 안정적으로 현금화되고 예측 가능한 자금 흐름이 형성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금 공급 정책과 자금 순환 구조 개선 정책이 함께 추진될 때 소상공인 금융은 위기 대응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패스 대표·공학박사

〈필자〉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IBK기업은행에서 스마트금융업무를 총괄한 후, 핀테크분야에서 전문성을 이어가며 소상공인간편결제사업추진단장, 한국간편결제진흥원장,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글로벌 핀테크기업 한패스의 대표이자, 550여개 국내외 핀테크기업이 소속된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