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공지능까지.
이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칩의 성능과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반도체 설계자입니다.
짐 켈러(Jim Keller)는 이 분야에서 여러 번 업계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성능 경쟁에서 밀려 있던 CPU와 모바일 칩 설계를, 다시 경쟁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설계자였습니다.

업적 1. x86-64 아키텍처로 컴퓨터의 기본을 바꾸다
짐 켈러의 첫 번째 대표 업적은 AMD에서 만든 x86-64 아키텍처입니다.
이 기술은 2000년대 초반, 기존 32비트 컴퓨터 구조의 한계를 넘기 위해 설계됐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PC는 메모리를 제한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성능 확장에도 분명한 벽이 있었습니다.
짐 켈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x86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64비트로 확장할 수 있는 설계를 제안합니다.
이 설계는 AMD의 애슬론 64(Athlon 64) 프로세서에 처음 적용됐고, 이후 인텔을 포함한 전 세계 PC가 같은 구조를 따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컴퓨터가 64비트 기반이 된 데에는, 짐 켈러가 설계한 이 구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업적 2. 아이폰의 두뇌, 애플 A 시리즈의 시작을 만들다
짐 켈러는 이후 애플로 자리를 옮겨, 스마트폰 칩의 방향을 바꾸는 작업에 참여합니다.
그가 핵심 설계를 맡았던 칩이 바로 애플 A4와 A5 프로세서입니다.
이 칩들은 애플이 외부 칩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최적화된 자체 설계 칩을 만드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A 시리즈 칩은 성능은 높이고 전력 소모는 줄이면서,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이 선택은 훗날 애플이 M 시리즈 칩으로 PC 시장까지 확장하는 기반이 됩니다.
즉, 오늘날 애플 실리콘 전략의 뿌리에도 짐 켈러의 설계 철학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업적 3. AMD를 다시 일으킨 '젠(Zen)' 아키텍처
짐 켈러의 가장 극적인 업적은 AMD의 젠(Zen) 아키텍처입니다.
2010년대 초반, AMD는 인텔과의 성능 경쟁에서 크게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짐 켈러는 이 상황에서 혁신적으로 재설계한 CPU 구조를 제안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젠 아키텍처입니다.
젠은 성능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개선하고,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등장한 라이젠(Ryzen) 프로세서는 AMD를 다시 경쟁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CPU 시장 전체의 가격과 성능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한 설계자가 회사의 운명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