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질서가 전례 없는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기후위기, 인공지능(AI) 혁신, 극심한 양극화가 인류를 압박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대재앙을 막고 인류와 지구가 풍요롭게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지구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문명적 대전환이 시급하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이를 구현할 방안으로 '살림셀'을 제시했다. 살림셀은 에너지·식량·자원을 자립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삶의 단위를 뜻한다. 한국 고유의 사상인 '살림'에서 찾았다. 기존 경제 패러다임인 '머니로직'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법이라는 게 전 이사장 설명이다.
살림셀은 제로베이직·어반베이직·컬쳐베이직이라는 3대 기둥을 통해 생존 안전판, 디지털 연결, 공동체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구현한다. '살림자본주의'는 살림셀을 기반으로 탄소 절감과 사회적 비용을 자산화하는 새로운 경제 엔진이다. 전 이사장은 전력난·저출산·지역 격차 등 난제를 동시에 풀어낼 '마스터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조정형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
-인류가 기후위기, AI, 양극화와 같은 복합적인 대변화에 직면해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향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는가.
▲지난 한 세기를 지배해 온 지배, 성장, 경쟁의 '머니로직(Money Logic)'이 이제 그 구조적 수명을 다했다. 돈이 주인이 되어 움직이는 이 시스템은 자원을 끊임없이 채굴하고 소비하는 선형적 구조 탓에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자본의 무한한 탐욕은 AI와 기술을 발전시켜 결과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이는 대다수 개인의 소비력 감소로 이어져 경제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극단적인 빈부 격차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작년에만 18개국에서 생존을 위한 폭동으로 표출되었고, 근본적인 해결책 없다면 올해도 그 불길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하는 길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귀결될 것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전쟁, 시스템이 붕괴하는 경제 대침체, 아니면 혁신을 통한 문명적 대전환이다. 공멸을 피하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기존 머니로직의 과감한 대전환이 시급하다.
-복잡한 세상을 위한 분산형 해법으로 '살림셀'을 제안했다. 기존 방식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표준화된 '컨테이너'가 세계 물류 혁명을 일으켰듯이, 대전환을 성공시키려면 '기본 단위'의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인류에 닥친 다중위기를 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문제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단위에서 해결 가능성을 입증하면 매우 빠르게 확산되면서 혁신에 의한 대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저는 문명적 대전환의 기본 단위로 '살림셀(Salim Cell)'을 제안한다.
다중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다. 기후재난 등 다중위기 상황에서 과부하가 걸린 국가의 부담을 줄여야 하고, AI와 기술 발전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삶의 환경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도시가 중앙에서 공급하는 에너지와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 소비처라면, 살림셀은 에너지와 의식주 등 생존 필수 요소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순환시키는 능동적이고 자립적인 혁신 기본 단위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미 일부 지역과 캠퍼스, 민간 조직에서 에너지 자립과 식량 자립 그리고 지역 순환 등 살림셀의 요건 중에 일부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곳이 살림셀이 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살림(Salim)'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위대한 철학적 유산이다. 서양의 '이코노미(Economy)'나 '리빙(Living)' 같은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심오한 뜻이 있다. 우리말 '살림'은 단순히 집안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우리 의식의 실천적 언어다. 우리 남편, 우리 아이 등, 우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우리가 곧 나의 확장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되면 내가 잘못되는 것이기에 금 모우기 운동 등 위기 상황에 단합하는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 우리 고유의 '살림'의 가치가 병든 지구와 인류 문명을 치유할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림셀'과 '살림자본주의'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살림셀의 세 가지 핵심 기둥 즉 '3대 기본 요소'로 '제로베이직(자립)' '어반베이직(디지털 연결)' '컬쳐베이직(공동체)'를 강조했다.
▲살림셀이 지속가능한 생존 단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미 상용화된 분산에너지·저장·관리 기술 등을 조합하면 가능한 수준이다.
제로베이직은 생존을 위한 자립의 토대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을 의미한다. 외부의 공급망이 끊겨도 생존할 수 있도록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물과 식량 자원을 자체적으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 환경 부하를 최소화하며 인간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반베이직은 문명의 내재화와 스마트 연결 인류가 만든 문명의 이기를 살림셀 안에 내재화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펜데믹 때 일상이 됐다. 즉, 물리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지만, 디지털로 연결되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스마트한 환경이다.
컬쳐베이직은 새로운 일과 가치를 창조하는 공동체 일자리가 소멸된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동체 문화를 의미한다. 지구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선(善)을 추구하는 가운데 구성원들이 서로 정서적 유대를 통해,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창출해내는 '역동적인 살림 공동체'를 지향한다.

-새로운 경제 엔진으로 '살림자본주의'를 주장했다. '머니로직'이라는 기존 모델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분명 머니로직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당장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돈이 흐르는 '금융의 문법'은 그대로 이용하되, 그 안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성격'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다.
마치 탄소배출권이 거래 가능한 자산이 되었듯, 살림셀을 통해 줄어든 탄소량과 사회적 비용 절감분을 수치화 하여 이를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크레딧'으로 만드는 것이다. 살림셀도 법인형태이기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투자자는 도덕적 만족이 아니라 실질적인 미래 가치 상승을 보고 투자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살림셀' 모델은 향후 우리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살림셀의 확산은 삶의 기본 환경을 바꾸자는 것이다. 과거에는 별도의 기기였던 카메라가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에 맞춰 초소형 모듈로 규격화되면서 엄청난 부품 시장이 열렸다. 살림셀도 마찬가지다. 살림셀이 확산되면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이 새로운 플랫폼에 맞게 재설계되고 조정될 것이다.
그동안 머니로직에 맞춰 대량 생산과 소비에 최적화되었던 제품들은 이제 살림셀에 장착될 지속가능하고, 저에너지 제품 그리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 등으로 진화할 것이다. 기업들은 살림셀이라는 새로운 규격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림셀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다중위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침체된 산업을 다시 살려내는 강력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제가 그리는 살림셀이 가져올 미래 변화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보완하는데 살림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나. 딥잡(Deep Job)을 통한 장리스트(Genreist)가 되는 것이 새로운 일이라고 정의했는데.
유튜브라는 '환경'이 생기자 유튜버라는 '새 직업'이 탄생했듯, 살림셀은 '장리스트'라는 미래의 직업을 탄생시키는 요람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고용'만이 살길이었다. 하지만 이제 단순히 기술을 파는 일자리는 AI가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깊은 공감과 창의성이 필요한 '딥잡'이 필요하다.
이 변화를 위해 살림셀은 두 가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첫째, 생존의 공포를 없애주는 '베이스캠프'다. 먹고사는 걱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은 꿈을 꿀 수 없다. 둘째, 나만의 장르를 만드는 '장리스트'의 무대다. 생존의 짐을 던 사람들은 이제 자본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일에 몰입하게 된다. 자연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우주를 탐구하는 등 세상에 없던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들, 바로 장리스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살림셀은 사람들이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딥 잡'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가장 든든한 토양이 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살림셀은 복잡하게 얽힌 국가적 난제들을 한 번에 풀어낼 '마스터키'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살림셀은 여러 문제를 동시에 풀어낼 공통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첫째, AI 시대의 전력난 해소다. 살림셀은 그 자체가 하나의 '분산형 발전소'다. 개별 셀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발전소나 송전망 건설 없이도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예산으로 살림셀을 확장할 수 있어 일석 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 둘째, 국토 균형 발전이다. 살림셀의 '어반베이직' 즉 디지털 연결은 지방 어디에 살더라도 서울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 교육, 문화 서비스를 누리게 해준다. 셋째,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다. 살림셀은 주거와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뿐 아니라, 이웃이 함께 아이를 돌보는 공동체 문화를 복원한다. '온 마을 육아' 시스템이 갖춰지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넷째,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살림셀 구축을 위한 스마트팜, 수처리, 에너지 모듈 등 연관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침체된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딥 잡을 통한 장리스트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정부가 개별 정책에 예산을 쏟는 대신, 이 모든 효과를 아우르는 '살림셀 생태계 조성'에 집중함으로써 저비용 고효율의 국정 운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장께서는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바 있다. 입법부에서는 어떠한 법안을 제정해 제도정착을 뒷받침 할 수 있겠나.
▲개별적인 법안을 하나하나 만드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국회 차원에서 '머니로직'에서 '살림로직'으로의 근본적인 '인식 대전환'이 선행되는 것이다. 낡은 성장과 경쟁의 논리로 만들어진 현재의 법·제도로는 인류 생존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는 특정 법안의 나열보다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입법적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첫째, 에너지 주권의 전환이다. 개인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웃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분산에너지 및 자원순환'의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둘째, 공간 규제의 혁신이다. 소규모 자립 공동체가 실험될 수 있도록 '살림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다양한 미래형 삶의 터전을 허용해야 한다. 셋째, 가치 평가의 재정의다. 사람과 지구를 살리는 행위가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가치 자산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가 만든 '머니로직'의 시스템 속에서 치열한 경쟁과 불안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지금의 청년들이 힘든 것은 수명이 다한 '머니로직'이라는 낡은 게임의 룰 안에서 이기려다 보니 고통스러운 것이다. 청년들은 누군가의 부품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기존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 하면 안된다. 스스로의 고유성을 믿고, 자신만의 장르를 만드는 '장리스트'가 돼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는 생존 걱정 없이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완성해 갈 수 있도록, '살림셀'이라는 안전하고 튼튼한 무대를 만드는 데 남은 힘을 쏟아붓길 바란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한글과컴퓨터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낸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졌다. 벤처 1세대 대표 주자인 전 이사장은 정계에 발탁돼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 아낀 전기를 발전자원화하는 일명 '전하진법'으로 전력사업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2018년에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새로운 주거환경에 관한 연구'로 부동산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미래 도시는 지속가능한 인프라와 자급자족기반이 마련돼야 하고, 도시문명이 내재화된 자아실현공동체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살림셀'의 이론적 기초를 다졌다. 이후 디지털전환(DX)기반의 지속가능발전(SD)를 추구하는 SDX재단 이사장을 맡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후위기 해결이야말로 인류가 다음 문명시대로 도약하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아직까지 손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기후행동의 대규모화(Scale up small climate action)'라는 슬로건하에 자발적 기후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리=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