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 입법 논의가 발행 주체 논쟁으로 지연되고 있다. 은행만 발행해야 한다든지, 비은행이 참여하더라도 은행이 최대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는 제도 금융의 핵심인 은행이 중심에 서야만, 스테이블코인이 제대로 발행·유통될 수 있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유입되더라도 금융시장 안정과 달러라이제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맞는 얘기일까.
우선 우리나라보다 일찍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논의해 온 글로벌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과연 은행들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활발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다'이다. 유럽의 미카법(MiCA Regulation, 2023년 6월)과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 2025년 7월)이 스테이블코인을 명시적으로 허용했지만, 2023년 4월 소시에떼 제네럴이 두 개의 스테이블코인(EURCV와 USDCV)을 발행한 것 외엔 아직 발행 움직임이 없다. JP Morgan, Citi, HSBC 등도 검토했지만, 실제 발행한 건 모두 스테이블코인이 아닌 예금토큰이었다.
글로벌 은행들은 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주저하고 있나. 전문가들은 은행의 기본 수익 모델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핵심은 은행예금의 자기잠식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고객에겐 예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 계좌에 예금을 하든 은행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지갑에 넣어두든, 둘 다 언제든 결제하고 이체할 수 있는 디지털 현금이다. 차이가 있다면 형태뿐이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용이 늘면, 신규 자금 유입보다 기존 고객 자금이 예금 계좌에서 스테이블코인 지갑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제 살 깎아 먹기'다. 그리고 예금 감소는 대출과 투자의 감소로 이어져 수익 구조를 취약하게 함은 물론이다.
둘째, 은행 시스템은 스테이블코인이 발행·거래되는 블록체인 시스템과 구조 자체가 다른 점도 한 요인이다. 은행 시스템은 영업일과 영업시간이 제한돼 있는 폐쇄망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상에서 스테이블코인이 24시간/365일 거래되도록 하기 위해선 별도의 시스템 구축·통제 비용이 필요하다. 시장에선 글로벌 대형 은행 기준 대략 시스템 구축 비용 3억~8억달러와 운영비로 연간 1억~3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은행으로선 스테이블코인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아직 불확실한 상황에서 감내하기 쉽지 않은 비용이다.
운영리스크가 급격히 커지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은행은 금융상품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운영자가 된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수록 은행은 스마트 컨트랙트의 취약점, 키 관리, 브리지 사고 등 IT·사이버 리스크에 대한 노출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본래 IT 기업이 아닌 데다, 예금자 보호 등 감독과 시장의 잣대가 엄격한 은행으로선 선뜻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활성화에 앞장서기 어려운 이유다. 이외에 은행은 스테이블코인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인 연결성이 약한 점도 취약 포인트다. 폐쇄망 구조로 회사 간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아, 비은행·IT 기업과 같은 속도와 네트워크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글로벌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지 않고, 예금토큰을 택했고, 대신 미국의 페이팔, 유럽 Stasis, 싱가포르 스트레이츠X, 홍콩의 RD Technologies(규제샌드박스)와 일본 JPYC 등 비은행 회사들이 총규모는 470억 달러(추정)로 아직 적지만 다양한 기능·용도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있다.
그럼 글로벌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소극적이니까,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 외 국가들은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시간 여유가 있는 걸까. 전문가들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 테더의 USDT와 써클의 USDC가 이미 가파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USDT와 USDC 시가총액 합계는 2023년 말 기준 1160억 달러였지만, 2024년 말 1800억 달러, 작년 말엔 2,6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커진 셈이다.
문제는 이들 급증세와 함께 달러라이제이션 문제가 심화하고 있단 점이다. 특히 물가 불안이 없고 은행·카드 결제 시스템이 안정적인 국가에서조차 스테이블코인이 '스마트폰 달러'로 기능하며 조금씩 생활경제로 스며들고 있고, 특히 기업 거래와 국경 간 정산의 후단에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글로벌 업계 의견이다. 방치하면 통화 주권 이슈로까지 번질 수 있단 얘기다.
따라서 제반 환경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또 글로벌 추세와 정합성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은행 단독 또는 은행 중심 컨소시엄 모델만도 곤란하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현실적 선택은 은행 중심과 비은행 중심의 컨소시엄들이 상호 경쟁하는 구도라는 생각이다. 은행은 신뢰와 규율, 비은행과 IT 기업은 유통과 네트워크 효과를 맡아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최대한 빨리 활성화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 정유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