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례 없는 변화의 속도'라는 표현조차 진부하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사회 전반의 운영 체제를 다시 쓰고 있다. '속도'를 체감하는 근거도 분명하다. 챗GPT는 출시 2년 만에 연 3650억회 검색 규모에 도달했고(구글은 11년 걸렸다), 최근 주간 활성 사용자(WAU)는 8억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2개월여 만에 1억명이 순증한 수치다.
지각 변동은 대학 강의실을 정면으로 흔들고 있다. '교수님, AI가 다 해주는데 이걸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다. AI가 짜준 코드로 과제를 해결하지만 정작 그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마주하며 '결과물은 있으나 학습은 증발한' 아이러니를 목도한다.
AI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급변하는 AI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대학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충 맥락만 던져주면 알아서 코드를 만들어주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유행이다. AI 없이는 한 줄의 코드도 짜지 못하고, 오류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다시 AI에 의존하는 현상이 만연해질까 두렵다. AI가 생성한 코드는 맥락 없는 구조, 미흡한 예외 처리, 보안 허점 등으로 실제 사용하기 곤란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유지보수 불가능한 기술 부채(technology debt)로 누적돼 결국 단기 편의는 장기 시스템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보이지 않는 부작용은 더 크다. MIT 미디어랩 연구진이 글쓰기 과제를 수행하는 학생들의 뇌파(EEG)를 분석한 결과,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그룹에서 뇌 연결성, 집중도, 인지 활성이 현저히 저하되는 '인지 부채(cognitive debt)' 현상을 발견했다. 과거 계산기가 암산 능력을 일부 대체하는 대신 고차원적 수학 문제에 집중하게 한 것과는 결이 다른 문제다. 지금의 AI는 단순 계산 대체를 넘어, 문제 해결이라는 사고 과정을 외부 도구에 '아웃소싱'한 것처럼 학생들의 고차원적 판단 능력을 앗아간다.
'사고의 외주화'는 AI 모델 자체가 지닌 기만적 결함과 만났을 때 그 위험이 증폭된다. 최근 나온 한 연구(2025년 10월, ArXiv)에 따르면 코딩 AI 모델은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가장 부정확한 답을 가장 높은 신뢰도로 제시한다고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와 유사한 편향이다. 여러 실험에서 AI는 미묘하고 조용한 오류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생각하기를 멈춘 사용자와 틀린 답을 확신하는 AI의 조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AI의 본질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숙련자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파워툴(Power Tool)'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정확히 아는 전문가는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지만, 초보자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류를 양산할 뿐이다. 전동공구를 제대로 못 다루면 사고로 이어지듯, AI도 본질은 파워툴이라는 비유가 와 닿는 이유다.
AI가 코딩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AI를 배우는 컴퓨터공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위험한 풍토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대학 내에서 'AI 교육은 챗GPT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학문 분야로서 AI에 대한 경시를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비전공자의 남발하는 'AI 외주화'처럼, 기술 이해 없이 AI 결과만을 조립해 만든 시스템은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AI 시대에 전문 컴퓨터공학자의 역할은 제대로 된 시스템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판'이다. AI 대중화로 한편에서는 '전공 불요론'도 나오지만 컴퓨터공학자의 기술 이해도를 토대로 나온 설계 결과물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공공재'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학에서 AI 시대를 선도할 컴퓨터공학 전공 교육 과정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먼저 학생들이 AI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경험과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컴퓨터공학의 근본 원리와 기초를 자신의 힘으로 체득하며 문제 해결 근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충분한 기본기를 확립한 후에는 AI를 '생산성 증폭 도구'로 활용하는 법, 즉 'AI-증강 엔지니어링'을 가르쳐야 한다. AI 결과물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생성 결과를 검증·재현·해명하며, 최종 결과에 책임을 지는 훈련이다.
교육 평가 방식도 AI가 생성했을지 모를 최종 결과물이 아닌, 학생의 문제 해결 '과정'과 논리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혁신해야 한다. 진정한 학습은 '막히고, 좌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돌파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고생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고차원적 문제 앞에서 깊게 사유하고 돌파하는 경험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이러한 '좌절할 권리'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얻는 지적 성취감과 회복탄력성은 어떤 AI도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자산이다. AI 시대의 일자리 쟁점은 예일대 연구가 지적했듯 일자리의 총량이 아닌 '질과 분배'의 문제다. 깊이 있는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가 고품질 일자리를 차지한다. 대학의 책무는 바로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
'스스로 생각하며 해결 방법을 찾는 것, 그 다음에 AI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수정하며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것' AI 시대에 대학들이 지켜야 할 교육 방향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다.
백윤주 부산대 SW융합교육원장·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 yunju@pusan.ac.kr
〈필자〉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이자 SW중심대학사업 책임자로 대학 AI·SW 융합교육 혁신을 이끌고 있다. 경기과학고 1회 졸업생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숙명여대 교수 재직 시절 창업한 기업이 네이버에 합병된 후 네이버 기술연구소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냈다. 이후 부산대에 부임해 정보화본부장을 거쳐 현재 정보의생명공학대 학장 겸 SW융합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전교생 대상 AI 리터러시와 AI 융합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