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회로박 멸종 위기…해법은
롯데에너지, 전기료 부담 커져
사업 철수 땐 K모바일 직격탄
美·英·獨, 경쟁력 강화 적극적
韓도 산업 육성·인센티브 필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회로박 철수 여부가 중요한 점은 한 회사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회로박이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물론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 국가 핵심 산업들과 깊이 연계돼 있어서다. 국내 회로박 제조 기반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공급망이 불안해져 핵심 산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국내 유일 회로박 제조 중단 검토…무엇이 문제였나
회로박은 전기 신호 전달을 돕는 소재다. 전기전도도가 높은 구리를 얇게 펴 만든다. 롯데그룹은 2023년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회로박을 만들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현재 익산공장에서 회로박을 생산하는데 제조 방식 특성상 전력 사용량이 많다. 구리 이온이 녹아 있는 황산구리 용액에 금속 드럼을 담가 구리막을 입히는 '전해도금'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국내 제조 철수를 검토하게 만든 요인은 수익성 악화지만 큰 원인은 전기료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고통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전기료까지 빠르게 올라 사업 부담이 커진 것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산업용 전기료는 181.48원으로 2021년 대비 72%나 상승했다. 제조원가의 약 20%를 차지하는 전기료가 계속 오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해외 사업장인 말레이시아와 비교해 국내 전기료가 2.5배 비싸다.

여기에 부담을 상쇄하던 이차전지용 전지박까지 수요가 감소하면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이 회사의 전체 동박 가동률은 2023년 76.9%에서 올해 2분기 48.1%까지 추락했다.
회로박 사업 이전이나 철수 등이 결정될 경우 가장 타격이 우려되는 분야는 국내 모바일 산업이다. 삼성 모바일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에 들어가는 회로박 80~90%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품 개발 및 양산에 지연이나 수급 불안정 등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회로박 회사는 중국, 일본, 대만 등에 있다. 또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공장을 해외 이전할 경우 수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해외 의존은 공급망에 부정적이다. 일본의 경우 2019년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산업에 충격을 준 전례가 있고, 중국은 미국 수출 규제 대상이라 소재 채택 시 향후 대미 수출이 불확실해질 수 있다.

◇ 해법은 무엇…'전략산업' 보호하는 해외
회로박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지원하면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료 인하도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최근 국내 전기료가 급등에도 아직 해외 주요국 대비 저렴하다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도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국가 산업에 대한 기여도와 제조업 보호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전략 산업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구리와 구리로 만들어진 제품을 '전략산업 소재'로 지정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지난 8월부터 구리, 반완제품 구리(회로박), 구리 집약 파생제품에 50%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또 미국 국방부와 연방정부는 자국 구리와 동박을 우선적으로 조달하기로 하고, 기업에도 2027년부터 생산량의 25%를 자국 내 판매하는 법적 의무 부과를 추진 중이다.
백악관은 구리 관세 발표 당시 “구리의 탁월한 전기 전도성과 내구성은 미국 경제·국가 안보·공중 보건을 지원하는 인프라 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강조했다.
영국도 지난 6월 7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부담하는 전기료를 2027년까지 최대 25% 인하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철강·세라믹·유리·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을 포함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지난 5월 출범한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정부도 전기료 인하를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가정용·산업용 전 영역에서 2026년부터 2029년까지 420억 유로(약 68조5318억원)의 부담을 경감시킬 계획이다.
유럽의 경우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따른 가스 가격 폭등으로 전기료가 치솟으면서 산업 근간이 흔들리자 이같은 정책을 내놨다. 지난해 하반기 전력을 연간 7만~15만MWh 사용하는 초대형 사업자 기준 전기료는 영국이 418.85원, 독일이 225.09원을 기록했다.
그동안 경제 단체를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료 급등으로 국내 제조업이 붕괴될 것이란 경고가 나왔는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회로박이 첫 테이프를 끊을지 모른다.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박사는 “해외는 전략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의 60~8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탄소중립을 이뤄내려면 정부가 먼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들에 에너지 효율 개선 등에 투자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