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있다. 산업혁명의 선도국인 영국이 증기자동차가 등장하면서, 1865년에 제정한 '붉은 깃발법'이다. 자동차는 시속 3km이상 달릴 수 없고, 사람들은 자동차 앞으로 지날 때 붉은 깃발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그 후 30년 동안 지속됐다.
반면, 동시대 독일과 미국은 유연한 제도화로 주도권을 확보해 나갔다. 벤츠가 등장한 1885년도 이 시기였다. 도로망 확충과 보험 및 면허 제도 정리도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보수적 제도에 발목을 잡혔고 자동차 산업의 세계적 경쟁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붉은 깃발법이 제정됐을 때 영국의 상황은 어땠을까.
당시 여론은 두 갈래였다. 마차 업계와 전통정책론자들은 소음과 연기, 속도가 말과 가축을 놀라게 하고 사회 혼란 등 기존 질서를 해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기술자와 기업가들은 산업 생산성과 사회 이동성을 향상시킬 것이라 강조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속도와 효율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책은 기존 질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혁신의 기회와 성과는 다른 나라로 넘어갔다.
현재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은행과 통화론자들은 통화량 팽창 및 외환 유출, 관리 부재 및 기존 질서 혼란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이다. 반대로 혁신론자들은 대응하지 않으면 달러 중심 질서에 종속된다고 경고한다. 마치, 150년 전 영국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우선 통화량 우려부터 짚어보자.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코인 발행으로 인입되는 현금을 국채 매입이나 은행 예금 등 안전 자산에 예치하도록 규정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발행 조건이다. 통화량은 이 때부터가 중요하다. 국채 매각이나 예금을 유치한 금융기관은 들어온 현금을 대출 등 신용창출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통화량 증가는 발생하지 않는다. 즉, 금융기관의 별도 계정 관리만 확립된다면, 통화량 증가는 억제 가능하다. 이 부분의 제도화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외화 유출 이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국내 이용자들은 업비트나 빗썸 등 거래소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T(테더)나 USDC(써클)를 매입해서 해외거래소로 이전할 수 있다. 100만원 이상이면, 자금세탁방지 규정에 따라 신고절차가 필요하고, 해외 거래소도 자금세탁방지나 고객확인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외화 유출은 발생하지만 제도적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어떨까. 이용자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플랫폼으로 전송 또는 유통한다면 원화는 국제적 화폐 단위로 기능하게 된다. 만약 해외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원화로 교환하지 않을 경우, 원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사용처에서 이용된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더 투명하게 추적된다. 어쩌면 원화 국제화의 출발점인 셈이다.
관리 가능성은 오히려 달러보다 높다. 블록체인 기록을 통해 이동 경로와 최종 사용처가 실시간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술도 발달했다. 이처럼,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자금세탁방지와 고객확인절차 체계 안에서 충분히 규율될 수 있다. 통제 불가능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통제 가능성이다.
지금, 글로벌 국가는 스테이블코인 질서의 주도권을 향해 달리고 있다. 테더와 서클 경영진이 국내 시장을 찾는 이유도 다가올 질서에 대한 사전 대응일 것이다. 이에 한국은 원화의 국제화 등 큰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됐는지 반문해 본다. 붉은 깃발법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위험을 부각해 기회를 잃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에 적합한 해법을 모색할 것인지다. 최근 법안 관련, 정책 기관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만큼 시장에 부응하는 결실이 나오길 기대한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nagaiaid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