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마다 보이는 파랑과 빨강의 대비는 마치 태극문양을 보는 듯하다. 태극은 상반되는 두 기운, 즉 음(파랑)과 양(빨강)을 의미하는데 동양철학에서의 음양은 두 기운의 조화로운 균형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만약, 파랑 혹은 빨강만 지속되면 어떨까? 썩는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주식물납제도는 가업(家業)승계시 내야 할 상속세나 증여세를 주식으로 납부할 수 있는 제도다. 납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가가 주식을 담보로 일정 기간을 유예해 주는 제도인데 지난 1997년부터 2024년까지 주식물납으로 상속세를 낸 기업 중 41%가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발생한 국고손실도 수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는 일본 제조업의 정신적 토대다. 1970~1980년대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기업들은 전 세계를 석권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부(富)의 상징은 강남의 아파트와 거실에 걸려있던 소니TV였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 백악관에도 삼성TV가 걸려있다.
가업승계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 경영 노하우를 후대로 전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기업의 안정적 승계라는 명분으로 이를 장려했고, 부의 무상이전이라는 비판까지 감내하며 다양한 세제혜택,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충당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가업승계 기업 중 40%이상이 문을 닫는가? 왜 일본 제조업은 몰락했는가?
과거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의 선대 기업인들은 맨손 창업신화를 일궈냈다. 특히 강력한 리더십 기반의 가족중심 경영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내 피땀으로 일군 기업' '내 소유'라는 인식이 깊이 형성되었고, 가업을 잇는다는 유교적 관념까지 투영되며 가족승계는 당연시 여겨졌다. 이는 기업을 바라보는 중대한 시각의 차이를 만들었다. 기업을 '공적자산'이 아닌 '사적재산'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대 산업사회는 소수의 장인이 통제하는 모노즈쿠리의 영역이 아니다. 표준화된 프로세스, 유기적인 협업시스템, 신속한 대응력이 기업의 경쟁력이다. 이는 수백년 된 노포(老鋪)가 수백만명 고객에게 균일한 맛을 제공하는 패스트푸드점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식물납제도가 수조 원의 국가손실을 야기한 것은 잘못된 기업관에서 비롯된다. '자기소유'라는 창업주 가족의 인식, 기업을 '사유물'로 인정하는 막연한 사회관념 속에서 부실기업의 연명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한 것이다.
중동의 한복판에는 사해(死海)라는 큰 호수가 있다. 말 그대로 죽은 물인데, 이유는 강물이 흘러 들어오지만 빠져나가는 출구가 없다. 여기에 사막의 열기까지 더해져 물의 염도가 주변 바다보다 10배나 높다. 아무런 생명체도 살 수 없다.
'고인물은 썩는다' 이 자명한 진리는 자연계뿐 아니라 기업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인물 중심의 경영에서 혁신이 발원될 수 없고, 변화는 요원하다. 필자는 가족승계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승계의 방식은 다양하며 예로 인수합병(M&A)은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M&A는 단순한 소유권의 이전이 아니다. 기술, 자본, 경영노하우, 혁신을 불어넣고, 무엇보다 기업을 되돌아볼 수 있는 객관적시각을 제공한다. 한편 자기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려는 요즘의 MZ세대는 가업의 대물림보다 기업을 팔아 본인 비전에 활용하기를 바란다. 즉 M&A외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고인 물은 과거를 보지만, 흐르는 물은 미래를 향한다 정체는 '죽음' 변화는 '생명'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