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퓨처로그] 이제야말로 한-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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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

어제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정확히 60년 전 국교를 정상화시키는 데 합의한 날이다. 그러니 오늘은 요즘말로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1일'되는 날인 셈이다.

동양적 사상에 따르면 한 갑자를 돌고, 새로 시작하게 됐으니 의미가 얕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이야기를 할때 꼭 부딪히는 난제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과거 우선이냐 미래 우선이냐의 선택이었다. 과거를 따지는건 반일(反日)로, 다 잊고 미래로 가자는 건 친일(親日)로 양분됐다.

양국은 최근 비슷한 경제·산업적 침체를 겪고 있다. 성장기 더없이 든든한 뒷배였던 미국이란 동네형이 다 커버린 두 나라를 향해, 보살펴준 보상을 내놓으라고 압박 받는 신세도 비슷하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졌지만, 미래 성장분야에 대한 확고한 발판이나 기반을 닦지 못했다는 공통점까지 유사하다.

이런 객관적 처지가 그간 날카롭게 맞섰던 정치·민족적 갈등을 어느정도 누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럴 때 작은 부분 협력이라도 좋은 경험적 단초로 쌓인다면 어떨까. 앞으로 60년도 이웃해 살아야하는 우리 처지로선 분명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재명 정부 출범 18일 동안 여러 인상깊은 변화 모습이 국내외에 실시간 전해졌지만, 그 중 특히 외교분야 변곡점이 될 만한 두 장면만 꼽으라면 모두 일본과의 소통 모습이다. 하나는 취임 뒤 처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뒤 바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한 일이다.

이어, 긴급하게 초청받아 날아간 캐나다 G7 정상회담에서도 이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와 비중있게 회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사태 때문에 급거 본국으로 돌아간 탓도 있지만, 이 대통령 외교 데뷔 무대를 처음 맞상대 한 건 일본 총리였다.

이 대통령식 '실용 외교'는 이렇게 발을 뗐다. 이어 이시바 총리는 지난 19일 주일본 한국대사관이 연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에 전직 총리들을 대동하고 직접 참석하는 전에 없던 성의를 보였다. 이것 마저 일본 측이 '보상완료'의 의미로 60년 전 이 날을 축하하려는 것이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분명 관계 변화의 신호란 점은 뚜렷해 보인다.

시차는 좀 있지만 초고령화사회에 이미 들어선 두 나라. 잘 만들지만 늘 좁은 시장과 내다팔 문제 때문에 고심하는 신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은 제조로, 일본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으로 영토를 확보한 나라. 사실상 고립된 전력 그리드와 청정 에너지 확보의 문제들. 미래 모빌리티·양자컴퓨팅 등 첨단분야에서 서로의 필요성.

이런 지점 하나하나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성(磁性)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도합 2억명 규모 단일경제권 조성 같은 광범위한 아이디어까지 덧붙여지면 협력의 방법이나 길은 가히 무궁무진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한국 정보기술(IT)분야 기업들이 일본의 인공지능(AI)과 디지털전환 분야 거대해진 수요를 찾아 일본시장에 폭넓게 파고 들고 있다. 어쩌면 양국의 관계를 푸는 아주 오래된 성과가 드라마·팝 등 문화예술분야에서 시작됐다면, 앞으로 미래 관계를 푸는 협력의 힘은 분명히 기업들에서 나올 것이라 믿는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게 기억하되, 서로가 이득이 되는 새역사를 쓰는 것도 배척할 일은 아니다.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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