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216〉거버넌스 전환과 혁신기반성장, 그 설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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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한국 경제는 지금 분명한 위기 앞에 서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의 불확실성도 부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전환은 가속화되고 산업 구조는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많은 이들이 이제 성장을 이끄는 주체로 정부보다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과 글로벌 통상체계를 고려하면, 미래 성장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제도를 설계하는 정부의 역할 없이 성장 전략을 논하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혁신 기반 성장은 누가 설계하고 있는가?” 전통적으로 우리는 주요 경제부처가 이 역할의 중심이라고 여겨왔다. 과거에는 주력 산업을 육성하고 국제 통상 체제에 기대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장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한 정책 패러다임이 되지 못한다. 오늘날의 성장 전략은 와해적 기술 혁신의 흐름을 수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변화와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꿰뚫는 통찰, 그리고 지속 가능하며 혁신에 기반의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면, 그 설계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제 누구도 미래 성장을 위한 정책 패러다임이 기존의 경제와 산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과 관점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혁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업가정신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포함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에 기반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하려는 시도를 해온 바 있다. 종합과학기술심의회를 설치했고, 한때는 과학기술장관회의를 통해 과학기술 진흥과 연구개발 계획의 조정을 하도록 했다. 그 후 장관회의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전환하고,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통합적 거버넌스에 대한 구상은 점차 퇴색되었고,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과 혁신에 기반한 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다가서지 못한 채 방향성을 잃어버린 듯하다.

이제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미래의 혁신기반성장을 실질적으로 견인할 거버넌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누군가 '또 하나의 부총리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신기반성장은 기존의 산업 중심 정책 틀을 넘어서, 기술과 혁신의 언어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획력과 실행력을 갖춘 주체가 필요하다. 예전처럼 13개 부처와 국무조정실을 포함한 일률적인 회의체가 아니라, 의제에 따라 유연하게 기능을 조직하고 조율하며,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다시 상상해야 할 상위 거버넌스의 모습이다.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기존의 연장선 위에 서서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성장을 바라보는 시각, 전략을 설계하는 주체, 거버넌스와 정책 철학까지 모두가 새로운 관점과 기준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기술과 혁신을 기반으로 한 성장의 밑그림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단순히 또 하나의 부총리제를 구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혁신 기반 성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상위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진지한 구상과 설계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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