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우리나라의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을 요구한 가운데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에서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는 구글에게 국민 세금으로 만든 고정밀지도 반출을 허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1대5000 축척의 고정밀지도가 외국 관광객 유치 효과가 있다는 구글의 주장도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서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앞둔 가운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 업체를 대상으로 구글 정밀지도 해외반출 관련 의견을 수집하고 있다. 지난 6일과 7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간담회를 개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측량성과 지도반출 협의체'에서 본격적으로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을 논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플랫폼 업계는 구글이 관광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1대5000 축척의 고정밀지도 반출을 요구하는 것이 목적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글이 요청하는 1대5000의 고정밀지도는 기업간거래(B2B) 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지도로 도시계획,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에 활용된다. 해외 관광객 이용 등이 목적이라면 현재 1대2만5000의 지도로도 충분히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현재 1대2만5000 축척 지도를 사용하는 애플은 내비게이션 서비스(카플레이)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올해 '나의 찾기' 기능도 도입할 계획이다.
업계는 외국인 관광객이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려면 '축척의 정밀도'가 아니라 최신 관심지점(POI·Point Of Interest) 정보를 지도에 반영하기 위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POI는 지도 서비스에서 특정 위치나 장소를 나타내는 데이터 포인트를 의미한다. 서울에서 영업중인 식당 정보 등에 대해 신규 장소를 추가하거나 폐점 업체 정보를 반영한다. 이 같은 POI 지도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기능인데 구글은 국내 지도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국내 지도 서비스에서 점유율이 높은 이유는 POI 정보가 많기 때문”이라면서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반영한다고 해서 최신 POI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국내에서 조세 납부 의무를 성실하게 시행하지 않는 구글에게 세금을 투입해 만든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1966년부터 세금을 투입해 국내 지도를 구축해오고 있다. 1991년 이후로는 디지털화 작업과 항공사진 촬영, 지명 정비 작업 등을 수행하면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만들었다.
국내 사업자들은 이 지도 서비스를 활용한 수익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2004년 설립 이후 국내 매출에 대한 납세 현황이 불투명하다. 한국재무관리학회 세미나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구글의 매출 12조원, 관련 법인세만 518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구글의 실제 납부세액은 155억원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등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구글에게 국민 혈세로 만든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은 불합리하다”면서 “이는 오히려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