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의료IT 시장은 격변의 해가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AI) 범용화로 병원의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고, 이는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 과거 전자의무기록(EMR) 도입으로 촉발된 '1차 디지털혁명'이 이제는 AI로 대변되는 혁신기술이 '2차 디지털 대혁명'을 불러옴에 따라 대응 여부에 경쟁력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의료IT 산업도 변곡점에 서있다. 데이터 기반의 정밀·예방의학 요구가 커지면서 AI전환(AX)은 필수가 됐다. 특히 지난해 발발한 의정갈등은 병원의 디지털전환 당위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부족한 의료인력을 대체하고, 병원 구조개선을 위한 IT 접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은 세계 최대 의료IT 콘퍼런스 'HIMSS 2025'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나라 의료IT 분야 최고 전문가들과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지혜 HIMSS코리아 대표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
△염민섭 한국보건의료정보원장
△조치흠 계명대 동산의료원장
△주성훈 뷰노 최고기술책임자(CTO)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추진센터장
△사회=정용철 전자신문 디지털헬스케어부 차장

◇사회(정용철 전자신문 디지털헬스케어부 차장)=HIMSS 2025가 개막했다.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염민섭 한국보건의료정보원장=AI와 디지털전환이 전반적으로 강조됐다. 과거에는 아날로그를 디지털 정보기술로 전환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AI를 접목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특히 환자 참여나 행정, 간호 등 병원 내 전반적인 영역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된 점이 인상 깊었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AI가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기술들이 단순히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환자 맞춤형 치료와 예후 예측을 가능하게 한 점이 의료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잠재력을 보여줬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비슷한 AI 기반 임상 의사 결정 지원 시스템(CDSS) 도입과 연구가 진행 중이라, 이런 활용 사례를 보며 실질적인 가능성과 영감을 느꼈다.
◇김지혜 HIMSS코리아 대표=HIMSS는 빠른 변화에 맞는 준비와 수용을 위해 의료기관과 협업도 많이 하지만 AI처럼 빠르게 확산하는 기술에 대한 규제 논의도 다양한 정부와 하고 있다. 올해는 아시아, 유럽 국가들과 모여 AI 관련 법안에 대해 함께 검토했다.

◇사회=올해 HIMSS 2025가 의미가 있는게 아시아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박승우 삼성서울병원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우리나라 의료IT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나.
◇조치흠 계명대 동산의료원장=HIMSS는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가진 기관으로, 우리나라 병원이 기조연설을 맡았다는 점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에는 여러 국가 의료진이 방문해 디지털혁신을 배운다. 이런 점을 HIMSS가 인정했고, 의미 있는 성과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 혁신 등 과제를 풀어야 한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추진센터장=아시아 최초 사례를 우리 병원이 남기게 돼 영광이다. 다만 삼성서울병원이 이번 콘퍼런스에서 주목 받았지만, 우리가 강조한 성과는 다른 병원들도 공통적으로 추진했던 부분이다. 올해 기조연설로 준비과정과 저력 등을 공유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주성훈 뷰노 CTO=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IT 도입과 투자에 관심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조연설과 같은 성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병원과 회사가 갖는 위상은 다르다. 국내에서 아무리 병원 공급 실적과 임상 데이터를 보여줘도 결국 미국 시장에선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적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글로벌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올해 HIMSS 최대 화두가 'AI'인데, 우리나라 의료AI 기술과 활용 수준은 어떤가.
◇차원철=사람, 절차, 기술 3가지 측면에서 봐야한다. 병원 내 AI를 잘 평가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부족하다. 연구나 진료과정에 AI를 접목하기 위한 표준 프로세스도 갖춰지지 않았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효과나 관리 등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아직 갈 길이 멀다.

◇주성훈=의료AI 관련 논문 수는 미국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많다. 하지만 허가 받은 제품 혹은 임상적 유효성을 확보한 사례 등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부족하다. AI 의료기기가 병원에 도입되기 위해선 수가가 필수다. 이 체계가 만들어진 게 얼마되지 않았고, 수가 자체도 낮아서 아직 성숙됐다고 보긴 어렵다.
◇사회=AX가 의료기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활발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염민섭=의료IT 솔루션 도입이 활발한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의료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미국에선 환자가 진료 예약을 하면 의사가 환자와 함께 진료계획을 짜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행정 낭비가 발생하는데 이를 IT를 도입해 해소하고, 정부는 여기에 따른 보상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소위 '3분 진료'라는 말처럼 진료시간이 짧고,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는 등 미국과 환경이 다르다. 결국 국가적으로 의료IT를 촉진하기 위해선 의료체계에 대한 분석과 보상체계가 중요하다.
◇박중신=최근 의료AI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병원 내 창업하는 교수들도 많다. 이들이 개발한 제품을 병원이 도입해 임상 검증이나 레퍼런스를 만들어주면 선순환 구조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제약이 있다. 새로운 기술임에도 단독입찰에 대한 문제제기나 내부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등 투명성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속도감 있는 도입을 위해선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주성훈=병원의 AI 도입 과정에서 다양한 장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장벽만 해소된다면 우리나라만이 갖는 강점도 확실하기에 경쟁력이 충분하다. 예를 들어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교수들의 연구 열정과 속도, 환자 데이터 등은 확실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사회=세계 주요 병원의 핵심 미션 중 하나가 '디지털전환'이다. 우리나라 병원들의 디지털전환 수준은 어떤가.
◇조치흠=디지털전환에 대한 의지는 높다. 실제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다수다. 다만 현실적인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디지털전환을 위해선 인력과 비용이 수반된다. 디지털 패솔로지(병리학)를 도입하면 수가를 주는데, 이 금액이 너무나 적다. 통상 기업은 수익이 15% 이하면 투자를 줄이는데 병원은 의료이익외 수익 창출이 전체 매출의 5~7% 밖에 안된다. 이러니 디지털전환을 추진할 동력이 부족하다.
◇김지혜=우리나라 EMR 보급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디지털전환을 위해선 EMR외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솔루션과 인프라가 요구된다. 우리나라 병원은 디지털전환이라는 큰 방향을 위해 세부 전략과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부족한 것 같다. 기술과 연구 수준은 높지만 장기 전략이 빠져있는 것이 아쉽다.
◇염민섭=현재 정부에선 진료정보 교류사업을 하면서 회송수가를 제공하는 등 디지털전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큰 방향에서 병원의 디지털전환을 촉진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디지털전환에 따른 사회적 이익과 비용효과가 검증된다면 보상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지난해부터 이어진 의정갈등은 우리나라 병원의 디지털전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중신=물론이다. 다만 그 영향이 디지털전환을 가속화할지 지연시킬 지는 좀더 두고 봐야한다. 병원 경영이 악화되면서 투자 여력도 줄고 있다. 당장 급한 부분에 투자가 우선 집행되니 디지털전환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공의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이를 해소할 방편으로 AI 등을 활용한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높다.
◇ 조치흠=의정갈등 이후 병원 생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병원 경영지표가 악화되면서 투자 여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만 볼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선 디지털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동산의료원은 의정갈등을 계기로 디지털전환에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당장 인력난을 해소하고 의료진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AI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다.
◇주성훈=이런 측면에서 AI 도입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기업도 상당히 힘들다. 디지털전환을 위한 솔루션을 도입하기 위해선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현재 대형병원 여건상 이런 투자가 쉽지 않다. 교수들의 업무가 크게 늘면서 AI 솔루션에 대한 임상적 검증이나 활용 등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해 기업들도 사업에 지장을 많이 받는다.
◇사회=의료 디지털전환이 대부분 규모가 큰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많은 환자가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선 1, 2차병원까지 디지털전환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염민섭=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1~3차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교류사업뿐 아니라 마이데이터 기반 '나의건강기록'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투약정보, 건강검진기록, 예방접종기록 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9개 공공기관에서 제공되는 본인의 보건의료정보와 건강정보고속도로 사업에 참여한 1004개 의료기관에서 제공되는 진료기록을 보고 의사 진료시 참고할 수 있다.
참여기관을 지속 확대해 병원 규모와 상관없이 의사들은 환자 진료기록을 확인해 단절되지 않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치료뿐 아니라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한 예방적 서비스도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건강기록 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중신=미국 정부는 '미닝풀 유즈' 프로그램을 실시해 병원들이 EHR을 도입하고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초기 투자비용을 지원하고, EHR 사용 기준을 충족한 병원에 재정적 보상을 줌으로써 중소 규모 의료기관도 디지털화에 동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중소병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용을 보조하거나 저금리 융자 등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아울러 전국 단위의 표준화된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어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상호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우리나라도 의료IT 강국이 되기 위해선 글로벌 기업이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지혜=국내 의료IT 기업은 국내 병원 요구사항에 맞추다 보니 글로벌 표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가 글로벌 진출에 발목을 잡고 있다. 또 한국의 의료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다보니 AI 기반 의료IT 솔루션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선 의료IT 업체에 대한 벤처캐피털, 정부 지원이 활발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약, 바이오 분야와 비교해 의료IT 영역 투자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IT 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데 한계로 작용한다.
◇조치흠=기술력이 뛰어난 의료기기 기업도 국내에 많지만 현장과 괴리감이 여전하다. 실수요자인 의사들이 필요한 기능과 디자인과 공급자인 기업이 생각하는 게 다르다 보니 현장 적용이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의사들은 외산 의료기기를 오랫동안 써오면서 이미 익숙해져 글로벌 표준처럼 작용한다. 결국 이 표준을 적용해 기술력과 차별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이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기업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개발과정에서 병원과 기업이 협업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라스베이거스(미국)=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