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 국민들은 아마도 그동안 초고속 인터넷망과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한 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이야기다.
우리가 여전히 디지털 또는 인공지능(AI) 선진국일까? 물론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거의 유래가 없을 만큼 자국 플랫폼을 보유한 디지털 기술국이라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AI 수치로 보면 낙관적이지 않다. 미·중이 마라톤에서 한참을 앞서가는 1위 그룹이라면 우리는 한참 뒤에서 쫓아가는 2위 그룹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2024년 더 글로벌 AI 인덱스'에 따르면 우리 대한민국은 종합 6위를 기록했다. 네이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생성형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를 진화시켜가면서 독자 거대언어모델(LLM)의 꿈을 키우고 있다. 카카오는 오픈AI와 협력해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LG는 LLM 엑사원으로 많은 협력업체와 버티컬 생태계를 구축하는 등 각자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물론 딥시크가 발표한 83억원 정도 비용이 정확하게는 1회 학습 비용이기 때문에 전체 개발 비용은 이보다 꽤 높을 것이다. 하지만 100조원 단위의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지 않고서 단 몇 조원의 지원만으로 학습프로그램을 잘 설계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 AI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큰 희망이다. 딥시크는 오픈소스 정책을 내세우면서 학습 추론 과정을 공개했다. 이것은 마치 예전 운용체계(OS) 전쟁 때 애플에 맞선 구글의 오픈소스 전략과 비슷해 보인다. 유료화로 진행되는 챗GPT 등 미국 AI에 대항하여 딥시크의 생태계를 세계에 이식시키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부는 딥시크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는 중국의 데이터보안법상 딥시크를 사용하는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 등이 중국에 있는 딥시크의 서버에 저장되고 중국 당국이 언제든 요청하면 제공해야 하는 중국의 데이터보안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보호의 문제는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AI를 사용하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 생태계는 물론 안보 문제 등을 대비하고자 한다면 우리만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가져야만 한다. 지금 시대의 AI는 핵무기에 비견되는 국가의 전략자산이다. 이는 기업이 포기해서도 안 되고 더더욱이 국가가 이를 방임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대한민국 AI 공청회가 있었다. 최근 국회에서 봇물 터지듯 열린 AI관련 세미나들에 이어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진지하게 논의한 자리였다.
필자도 진술인으로 참여했고 몇 가지 제언을 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명확한 비전과 청사진 그리고 과감한 정부투자다. 현재 한국의 AI 수준을 점검해 약점과 강점에 대한 SWOT 분석 뿐만 아니라 어느 경우에도 가지고 있어야 할 기초적인 것들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그것이 현실화 되려면 범정부 및 범국가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 순간에도 경쟁국은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정국은 아직 정리가 안 됐고 국론까지 분열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AI위원회는 그 역할조차 다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대표급 LLM을 만든다는 목표도 좋다. 네이버, 카카오, LG 등 유수의 국내 기업은 지난 10년 가까이 투자를 하면서 기술개발의 역량을 키워왔다. 이는 그나마 우리가 미국과 중국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열세에 있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재능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최고의 성적을 내듯이 우리 정부는 가능성 있는 우리 기업을 발굴·선정해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물론 지속적인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정경유착금지라는 터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실자본주의(cronyism capitalism) 시절에 기회균등과 정의라는 기준으로 금기시해왔던 것이 이제는 국가발전에 민·관 구분없이 협력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나가야 한다. 자동차와 조선의 현대, 반도체와 모바일의 삼성처럼 우리 대한민국경제의 초석이 된 글로벌 역량을 갖춘 기업의 출현은 AI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도 자사의 현재 기술역량과 청사진을 정부에 설명하고 정부의 집중투자가 가져올 경제 효과를 설득해야 한다. 공공자원의 투자를 받아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 새 가치 창출의 효과를 낸다는 확신을 가질 만큼 역량과 의지가 있음을 기업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공개적이고 이성적 절차에 따른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정부의 투자가 가시적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투자 비용이 공정한 과정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의 체력을 키우는 등 다양한 긍정의 경제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불확실하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누구는 이길 전쟁에 참여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AI 전쟁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전쟁에 참여해야만 죽지 않는다.
우리 디지털 산업에 대한 민간 투자는 정부의 플랫폼 규제 시도 이후에 위축되기 시작했고, 계엄 정국 이후에는 아예 꽁꽁 얼어버렸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추경 예산에는 반드시 AI 지원을 위한 예산이 확보돼야만 한다.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 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려는 계획은 효율성이 떨어져 보인다. 차라리 공공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기업에게 저비용으로 쓰게 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공청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사안의 시급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부디 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꼭 잡길 바란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 가톨릭대학교에서 조직상담학 석사를 취득했다.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