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저가 공세가 진행 중이다. 중국 배터리 장비 기업은 한국 제조사에 속속 장비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소재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 기업의 높은 점유율이 두드러진다. 전기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가 장기화되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면서 중국산 소재·부품·장비가 더욱 주목받는 모습이다.
최근 중국 업체 진출이 활발한 분야는 배터리 생산장비 시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항커커지, 선도지능, 잉허커지, 헝이능 등 중국 배터리 장비를 채택하거나 적용을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배터리 후공정에 해당하는 활성화 공정 장비 시장에서 중국 기업 경쟁력이 높다.
중국 장비사 항커커지는 SK온 공급망에 포함된 데 이어, 삼성SDI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라인 활성화 공정에도 진입했다. 중국 장비사 잉허커지는 한국 고객사 말레이시아 공장에 원통형 배터리 생산장비를 공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잉허커지가 장비를 공급한 한국 고객사는 삼성SDI로 추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중국 남경공장에서 잉허커지 장비를 일부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수익성 확보가 국내 배터리 업계 최대 과제로 떠오르면서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 장비사 채택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배터리 공정 중 기술 난이도가 낮은 영역에 한정돼 있지만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다른 분야로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활성화 공정에 쓰이는 충방전 장비는 이미 기술이 평준화 된 만큼 국내 기업이 중국의 저가 공세를 이기기가 쉽지 않다”면서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이 리튬인산철(LFP)이나 각형 배터리 생산을 확대하면서 이 분야에서 더 생산 경험이 많은 중국 장비사들이 전공정 장비 분야로도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 소재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특히 중국은 리튬, 니켈, 흑연 등 원재료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인다.
현재 배터리 소재에서는 음극재(BTR, 즈천과기, 샨샨), 전해액(캡켐, 궈타이화룽), 분리막(상하이에너지, 시니어) 등 중국 기업이 국내 배터리 제조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의 전 단계 물질인 전구체 분야에서는 국내 자급률이 20%를 넘지 못한다. 특히 90% 이상이 중국에서 수입돼 대중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국내에서도 전구체 내재화 노력이 시작됐지만 원료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과 가격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배터리 캔과 케이스, 알루미늄 파우치, 부스바 등 부품과 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소모품 공급망에 중국 업체가 신규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터리셀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이 LFP 배터리를 앞세워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중국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LFP 배터리는 낮은 에너지밀도가 한계로 꼽혔지만 최근 성능 고도화와 낮은 가격, 안전성을 무기로 점유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 기아, KG모빌리티 등이 중국산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