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기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패권 경쟁의 성패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미중 패권 경쟁도 예외는 아니다. 첨단기술에 대한 지배력은 경쟁국의 국내외 움직임을 파악해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기술 추격을 지연 또는 방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두 가지 능력을 '판옵티콘'과 '초크 포인트'라고 한다.
세계 정보를 수집, 분석, 활용하는 능력인 판옵티콘은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 강화하는 데 필수 요소다. 2018년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에 내재된 안보 위험성을 경고한 데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5G 통신이 판옵티콘 능력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첨단산업의 가치 사슬에서 핵심 단계에 대한 지배력을 활용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초크 포인트 전략을 동시에 추구한다. 미국은 우선 첨단산업의 국내 제조 역량을 확대하고, 혁신 생태계의 부활을 시도한 것은 첨단산업 가치 사슬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을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그 상징이었다. 집안 단속을 마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전략으로 이동했다. 미국이 반도체를 대중 견제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동원한 것은 반도체 산업의 지구적 가치 사슬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크 포인트는 경쟁국인 중국이 첨단산업 가치 사슬에서 중요한 지점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는 효과가 있다.
인공지능(AI)은 2022년부터 미중 첨단기술 경쟁의 주 무대로 부상했다. AI는 그 자체로도 막대한 경제적 부를 창출할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다른 연관 산업에 미칠 파급효과는 예단하기조차 어렵다.
미중 AI 경쟁은 지난달 새 국면에 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3일 뒤인 지난달 23일 데이터 센터를 포함 AI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최대 5000억달러 규모 투자를 골자로 한 스타게이트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AI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해 중국을 멀찌감치 따돌리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했다.
중국 정부 또한 일찌감치 AI에 투자했지만, 반전 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압도적인 AI 패권을 역설한 바로 그 시점인 지난달 20일 딥시크가 최신 AI 모델 R1을 공개해, '딥시크 쇼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오픈AI가 2022년 11월 생성형 AI 서비스인 챗GPT를 개시해 세계를 흥분과 우려를 자아낸 지 불과 3년 만이다.
딥시크의 충격은 미국의 대중국 AI 전략에 대한 논란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은 AI 칩 수출 통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그러나 딥시크는 AI 전용 고사양 칩을 대규모로 사용하지 않는 '저비용, 고효율' 모델인 R1의 개발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딥시크가 미국 AI 산업에 대한 경종이라고 정의하고, '레이저처럼 정밀한(laser focused) 전략'의 수립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AI 칩의 수출 통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의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미국은 AI 칩 수출 통제의 범위를 더욱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새 경쟁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딥시크는 V3 모델의 개발을 위한 저사양 칩 H800 2000개를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딥시크에 투자 재원을 제공하는 하이플라이어는 미국의 AI 수출 통제가 시작되기 3년 전부터 AI 학습을 위한 슈퍼 컴퓨터에 투입하기 위해 1만1000개 이상의 A100를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R1 개발 과정에서 직면한 최대의 난제가 자금이 아니라, 고사양 칩의 확보였다는 딥시크 창립자 량웬펑의 고백은 중국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미중 AI 경쟁은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수출 통제의 진정한 효과는 딥시크를 포함한 중국의 AI 기업들이 기존 모델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2~3년 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장기전이라는 의미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seungjoo@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