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밸류업을 놓고 맞붙은 정부 '자본시장법'과 야당이 주도하는 '상법'이 탄핵 정국 이후 상법 개정으로 무게추가 급격히 기우는 모습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상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상법개정안 토론회를 연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 직후 “(상법개정 논의는)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달 28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논의만 하다 끝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와 여당은 국내 증시 밸류업 추가대책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야당은 '상법' 개정을 각각 추진 중이다. 주주이익을 보호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세부내용에서 차이가 크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상장법인이 합병이나 분할 등 재무거래가 수반되는 결정을 할 경우 △이사회에서 합병 목적과 기대효과 △가액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계열사 간 합병은 가액 산정기준을 폐지하고 모든 합병에 대해 외부평가기관 평가와 공시를 의무화한다. 합병 과정에서 특정 주주가 아닌 일반주주가 일방적 손해를 보지 않도록 정보 공개를 확대해 객관성과 중립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야당이 지난 달 당론으로 정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은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총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현행 조항은 그대로 두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주주들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지배 경영권 남용 등 각종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계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다. 법체계를 흔들 수 있고, 모든 기업에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 구성이 다양한데 이를 일괄적으로 '주주'로 묶었고 이사회 의사 결정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는 장기적 투자는 물론, 인수합병(M&A) 같은 대규모 경영 전략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
야당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합병·분할 등 특정 상황에서만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핀셋 규정으로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포괄적 규정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는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주주 이익 보호 조항을 담는 이유는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상법은 일반법에 해당하는 만큼 규제 수단이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체 법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대신 자본시장법에서는 상장기업 재무거래에 대해 각종 제한 조항을 둘 수 있는 만큼 실질적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8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야당에서 검토한 상법 개정안은 상장법인 합병 등과 관련 이슈에서 문제점이 촉발된 것들을 생각해보면 비상장법인 숫자가 100만개를 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규제까지 추가로 도입해야 되는지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이날 “상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지배구조 개선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부작용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으로 의사 결정이 지연되고 소송도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경제계 관계자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같은 목적으로 추진되는 안이지만 실제 작동 원리와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