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신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AI 핵심부품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과 일본, 캐나다는 막대한 자금으로 AI와 슈퍼컴퓨터를 개발합니다. 한국은 AI기업들이 '원팀'이 돼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정부는 AI 자산이 되는 개인정보 보호규제와 활용의 조화를 고려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데이터와 AI 법·제도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이 교수는 학계에서는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회장,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규제자유특구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규제심사 위원장, 범정부 마이데이터추진협회의 위원, 금융위원회 법령해석위원도 맡고 있다. 다양한 AI·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다루는 정부부처·위원회에서 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AI·데이터 정책에 대한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AI 제국주의 시대 한국이 택해야 할 전략으로 '소버린(주권)AI'를 제안했다. 그는 “소버린AI는 타국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이라며 “국가나 기업이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해 외부 기술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내 데이터 보안과 활용을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소버린 AI 전략은 미중 간 AI 전쟁에서 한국이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전략으로서 의미가 있다”며 “소버린 AI 역량을 지닌 국내 통신사, 플랫폼 기업, 제조업체, 스타트업과 정부가 원팀이 돼 역할을 분담·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정부 위원회 등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AI 법제도와 거버넌스에 대해서도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AI 기술개발을 통한 산업 발전과 소비자 편익이라는 가치와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가치를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프라이버시 보호에 기울어 있는 점이 아쉽다”며 “AI 개발을 위해 공개된 개인정보 기준, AI 프라이버시 위험 평가 모델, AI 투명성 기준 등 다양한 가이드 라인을 통해 활용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기업이 여전히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AI 개발, 운영을 위한 개인정보 특례법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각종 위원회 구조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위원회는 합의 방식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거버넌스인데, 최근 나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안건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정부 입장을 추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이 완성되고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 이해관계인 의견이 초기부터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초연결성,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로 집약되는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 잊힐 권리, 디지털 유산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 대책 마련도 향후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