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POSTECH)은 김범준 물리학과 교수와 통합과정 김광래·김현우·하승혁 씨 연구팀이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에서 '나선성 전하 밀도파(CDW)' 현상을 관측하고, 그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최근 물리학계 권위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나선성(Chirality)은 물체가 자기 거울상과 대칭되지 않고 구별되는 현상이다. 이는 전자 등의 입자 배치와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며, 양자 컴퓨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원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널리 존재하는 나선성의 형성 원리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타이타늄(Ti)과 셀레늄(Se)으로 이루어진 1T-TiSe₂(원티-타이타늄 셀레늄 투)라는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TMDs)에서 나타나는 전하 밀도파와 격자 변형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이 두 현상은 전자의 움직임과 원자 진동, 그리고 구조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라만 분광 장비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함께 수행한 빛의 비탄성 산란 실험을 통해 물질 내 원자들의 진동을 추적하고, 나선성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원자 진동을 지배하는 대칭성과 전하 밀도의 대칭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동안 전하 밀도파와 격자 변형이 동일한 대칭성을 가진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 두 현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기 다른 대칭성을 따랐다.
그리고, 이 대칭성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원자들의 추가 진동으로 인해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며, 그 결과 모든 대칭성이 깨져 나선성 구조가 형성됐다. 두 현상 간 대칭성의 차이가 나선성 구조 발현 메커니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김범준 교수는 “1976년 1T-TiSe₂의 결정 구조가 처음 보고된 이후, 이 물질에서 나선성이 발현된 최초의 실험적 증거를 찾았다”라며, “이번 연구는 향후 양자 물질 설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 재단법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이번 연구결과는 김기석 포스텍 교수, 복진모 연구원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뤄졌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