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끝나지 않는 리걸테크 발목잡기…“AI 주권 저해 우려”

대륙아주 변호사 징계 청구, 붉은깃발법 논란 또 불거져
이익단체 자의적 제도 해석에 리걸테크 산업 생사 휘둘려
진흥법보다 억제 금지 시급…法 데이터 접근성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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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기기가 발전하면 의사가 필요 없어진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습니다.”

리걸테크 업계는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변호사를 포함한 전문직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며 합리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 장비가 발전하고 비용이 낮아질수록 의료 질이 향상되고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으며 의사의 수입도 증가하는 선순환을 이루듯, 리걸 AI의 발전 또한 변호사와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AI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AI에 올라탄 글로벌 리걸테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와 토종 리걸테크 간 갈등은 AI 기술 발전 저해뿐만 아니라 AI 주권 확보에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자원 낭비와 이로 인한 기술 경쟁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판 붉은 깃발법

로톡 사태가 일단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AI 활용 리걸테크 및 법무법인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업계는 한국판 붉은 깃발법이라며 혁신 서비스의 중단으로 AI 주권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를 표했다.

최근 대륙아주는 AI 서비스 중단을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변협이 변호사징계위원회에 대륙아주 변호사 7명에 대한 징계 개시를 청구한 영향이다. 24시간 무료 인공지능 법률상담 챗봇으로 국민 사법 접근성을 제고했다는 호평을 받았던 서비스를 접은 것이다.

로앤굿은 지난해 5월 일반인 대상 법률 AI 챗봇인 '로앤봇'을 출시한 바 있다. 이후 '로앤서치'라는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로 선회했다. 변협과의 갈등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현재는 소송금융 서비스를 주력으로 운영 중이다.

로톡은 약 9년간 변협의 압박을 겪었다. 사안은 2015년 변호사에게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불법 알선'이라는 변협의 고발로 시작됐다. 21년 5월 '변호사가 아닌 자의 결과 예측 서비스 금지'를 골자로 하는 변호사 광고규정 개정으로 인해 형량예측서비스가 종료됐다. 제재 장기화로 최초 변호사용 AI 비서인 '슈퍼로이어'를 내놓기까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업계는 AI 기술에 대한 변협의 반발이 '한국판 붉은 깃발법'으로 작용, 혁신 서비스를 저해할 것이라 판단했다. 특히 대륙아주 등 대형 로펌의 AI 서비스 중단은 리걸테크 업계에 있어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 전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0위권 로펌인 대륙아주마저도 불법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변협의 위협에 따라 AI 서비스를 접었다는 것은, 그보다 힘이 작은 스타트업들에게는 사실상 AI 서비스를 하지 말라는 사형선고와 같다”며 “협회의 발언과 징계 시도 등으로 인해 한 산업의 AI가 완전히 짓밟히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AI 주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기술을 필두로 글로벌 빅테크가 국내 법률시장에 진출할 시 단기간 내 시장을 독점·잠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조계에서는 챗GPT나 클로드(CLAUDE)를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며 “결국 이대로라면 글로벌 AI가 국내 리걸테크 산업을 모두 장악할 것”이라 전망했다.

국가 중요 정보의 해외 유출도 문제다. 리걸 AI 개발 및 고도화 시 한국의 법률 데이터가 해외 기업에 의해 수집되고 활용되기 때문이다.

기술 격차를 벌리는 요인으로는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을 향한 규제 수위가 다르다는 점이 꼽혔다. 통상 국내 규제가 한국에 본사를 둔 국내 기업에만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내 기업은 변협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으나 해외 기업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변협 등의 국내 기업 억제책은 해외 기업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라며 “그 결과 법률 AI 분야 기술 주권을 영영 상실하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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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걸 AI 억제 금지' 법제화 시급

업계는 별도의 리걸테크 진흥법보다는 변협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징계에 대한 범정부 및 국회 차원의 제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갈등 진화에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느라 정작 기술 개발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로톡과 변협의 갈등 또한 경찰, 검찰, 헌법재판소, 공정위, 법무부 등에 이르는 결론이 모두 나온 후에야 소강상태에 이르렀으나 그 기간은 약 5년이 걸렸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변협 등 이익단체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생사가 휘둘리지 않도록 법무부 등 주무 부처가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가이드를 제시하는 등 불확실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발족한 '변호사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서는 1년이 되도록 상생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는 “내부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 성과의 내용이나 발표 시점을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나와있다.

올해 안으로 리걸테크 가이드라인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 및 내부 인력 교체 등으로 한동안 특위가 공전했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특위는 아직 개별 리걸테크 업체의 입장을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특위의 미온적인 태도에 아쉬움을 표하며 적극적 가이드라인 도출을 촉구 중이다. 법무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놨더라면 국민의 사법접근성 개선을 위해 닻을 올렸던 수많은 리걸 AI가 좌초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외에도 사업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판결문 등 법률 데이터 접근성 제고, AI 시대에 걸맞은 가이드라인·규제 정비 등이 꼽혔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회사를 발굴해 밀어주기보다는 전반적인 사업환경을 상항 평준화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며 “일부 회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경우 좀비 기업의 양산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등 충분한 법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며 “또, AI 기술 발전에 보폭을 맞춘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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