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는 금융 신산업인 만큼, 핀테크에 속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벤처다. 따라서 현재보다 미래의 수익기대가 커서 금리상승·하락에 상당히 민감하다. 금리가 하락하면 먼 미래 수익에 대한 할인율이 낮아져서 기업 가치가 커지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반대로 할인율이 높아져서 기업 가치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금리 상승기에 핀테크 기업들이 힘들었던 이유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9월 17일 미 연준(Fed)이 0.5%포인트 '빅컷' 인하한 데 이어, 10월 11일에는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것이 핀테크 업계의 숨통을 터주고 투자자들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현재 업계의 체감은 '아니다'이다. 유망하다는 일부 기업들 빼고는 자금이 꽁꽁 얼어붙어 여전히 '어려운 겨울나기'라고 한다. 특히 수익모델이 채 정착되지 않은 초기기업들은 직원 채용 중지는 물론, 복지·출장까지 줄이며 전사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단 얘기도 있다.
하지만, 뭐든지 국면 전환 초기엔 이전의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우선 벤처투자의 숫자가 바뀌고 있다. 올 1분기만 해도 2019년 이래 최악이라던 글로벌 벤처투자업계가 2분기부턴 금리인하 기대 때문인지 회복하는 분위기다. 2분기 글로벌 벤처투자액은 556억 달러(77조원)로 5분기 만의 최대치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직 초기 단계보다 중후기 단계 투자가 많긴 하지만, 지난 2분기 벤처투자액(2조5675억원)이 작년 동기보다 18.8% 늘어났다. 핀테크 투자도 모양새는 회복되는 추세인 듯하다. 한국성장금융(주)의 핀테크 펀드로 보면 규모는 작지만 올 상반기 투자액이 전년 상반기 대비 4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금리인하를 계기로 핀테크 혁신의 불씨를 계속 살려가기 위해선 첫째, 취약한 투자시장을 돕기 위한 '마중물 투자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금리상승 여파로 기업 가치가 대부분 반 토막 이하로 떨어져서, 벤처캐피탈 관점에서의 투자 빈티지(Vintage)는 오히려 좋아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공적 영역에서 마중물 투자를 늘려주면, 경우에 따라선 벤처투자자들의 투자 경쟁도 유발할 수 있단 얘기다.
마중물 투자 확대는 초기 단계와 스케일업(scale-up) 단계의 투트랙(two-track) 접근이 바람직하다. 특히 초기 단계에 대해선 '올챙이 시절 없는 개구리는 없다.'는 말을 상기했으면 한다. 은행 등 위험을 싫어하는 금융회사들의 성격상 전용 펀드 없이는 초기 단계 투자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중물 전용 펀드'를 조성하여 지속적인 핀테크 창업과 혁신을 유도해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국내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스케일업 펀드도 중요하다. 외국보다는 우리나라 투자자 주도로 핀테크를 성장시키고, 유니콘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현재 핀테크업계에선 토스 이후 유니콘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번 금리하락을 기점으로 한국 주도의 '유니콘 펀드'를 준비할 시점이란 의견이다.
둘째, 마중물 투자만으로 민간 벤처투자가 확대되는 건 아니다. 핀테크는 금융모델인 관계로, 금융당국의 규제정책 여부가 수익모델의 '좋고 나쁨'에 절대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마이데이터 2.0, '망 분리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금융혁신과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금융사와 빅테크가 아닌 영세 벤처성의 핀테크업체로선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영세 핀테크업체가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받는 경우 부가조건을 완화한다든지, 마이데이터 2.0 확대할 때는 고유업무가 딱히 없는 핀테크에겐 부수·겸영 업무를 보다 확대한다든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셋째, 핀테크업체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금리인하의 모멘텀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수익모델을 가능한 한 '손익분기점(BEP) 모델'로 정비한다든지, AI가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AI핀테크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글로벌시장에선 이미 영국의 콴텍사(Quantexa)나 이스라엘의 리퀴디티(Liquidity) 등과 같이 AI모델의 개발·탑재로 유니콘에 등극하는 핀테크업체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핀테크업계의 파이팅을 기대한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