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비브리오 패혈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비브리오균의 패혈증 촉진 병인을 새롭게 밝혀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김장성)은 김명희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 박사팀이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체내 침투 후 인체 면역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성과로 현재 항생제 외에는 치료제가 없는 패혈증균 등에 의한 감염병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생산하는 가장 치명적인 물질은 다양한 독성 인자들을 함유한 'MARTX' 독소다.
MARTX 독소는 패혈증균이 인체에 감염되기 전에는 함유한 독성 인자들이 비활성화된 묶음 형태로 존재하지만, 감염 후 인체 세포에 침투하면 인체 세포 단백질을 이용해 독성 인자들을 방출시켜 세포 기능을 마비시키고 패혈증을 촉진한다.
연구팀은 2019년 수행한 연구에서 어떻게 MARTX 독소에서 독성 인자들이 방출되어 병원성을 급격히 활성화하는지를 규명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 MARTX 독소에서 방출된 독성인자가 인체 세포 내 단백질과 만나 인체 면역을 공격하는 '트랜스포머 단백질'로 전환해 초기 방어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패혈증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X-선 결정학과 초저온-전자현미경(cryo-EM) 기술을 활용해 비브리오 패혈증균 독성인자와 인체 세포 단백질 간 결합을 정밀 관찰했다.
그 결과, MARTX 독소가 방출한 여러 독성인자 중 유일한 듀엣 독성인자인 'DUF1-RID'는 인체 세포 신호전달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 칼모듈린(CaM)과 강하게 결합, 인체 대사와 면역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인 NAD+를 분해하는 효소(NADase)로 바뀌었다.
동시에 또 다른 세포 신호전달 단백질인 Rac1과도 결합해 감염 초기 면역 방어에 핵심 물질인 활성산소종(ROS) 생산을 마비시켰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DUF1-RID이 CaM, Rac1과 결합하지 못하도록 돌연변이 패혈증균을 제작하고 이를 동물모델에 적용하자 별다른 증상 없이 생존하는 것을 확인하며 패혈증 치료의 새로운 대안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명희 박사는 “그동안 몰랐던 비브리오 패혈증균의 트랜스포머 단백질의 기능을 입체구조 규명으로 알 수 있었고 나아가 비브리오 패혈증균 감염이 기저 질환자들에게 치명적인 이유를 알게 됐다”며 “트랜스포머 단백질은 비브리오 패혈증균 외에도 콜레라균 등 다른 병원균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본 연구에서 확보한 고해상도 입체구조는 패혈증을 유발하는 감염병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7월 23일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주요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