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중도해지 방해'를 이유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 제재에 착수한 가운데 웨이브와 왓챠는 이용약관을 개정하는 등 자진 시정에 나섰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에 불리하게 짜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넷플릭스·웨이브·왓챠 등 3개 OTT와 스포티파이·벅스 등 2개 음원 서비스를 상대로 소비자의 중도 해지권 방해·제한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공정위는 이들 사업자가 서비스 중도 해지를 어렵게 하거나, 중도 해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넷플릭스코리아와 웨이브 사무실 등에 대해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면담 조사도 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웨이브와 왓챠는 공정위에서 지적받은 불공정약관을 손질했다. 웨이브는 지난달 '유료상품 이용약관'을 개정했다. 중도 해지와 관련한 안내문구를 좀 더 명확히 표기해 고객이 알기 쉽게 했다. 자동결제 및 해지 조항에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을 통해 자동결제를 신청한 경우에는 해당 약관이 우선 적용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왓챠 역시 일단위 환불이 가능하도록 이용약관을 고쳤다. 사용한 날짜만큼 공제하고 나머지 차액을 환불해 주는 식이다.
다만 같은 제재에도 넷플릭스는 대응에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미국 본사가 주요 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만큼, 우선 공정위 제재가 명확해질 때까지 두고 본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코리아 관계자는 “공정위 의결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공식적인 입장은 의결 이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넷플릭스 역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 사례처럼 '버티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어도비는 2022년 11월 '중도 해지'를 두고 약관규제법 위반으로 공정위 시정권고를 받고도 약관을 개정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13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한편, OTT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구독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일단위 환불이 공식화되면 콘텐츠를 몰아보고 하루 이틀 후에 해지하는 '체리피킹'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다. 업체들은 요금 인상으로 손실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제재하는 내용 자체도 구독경제 시대에 맞지 않지만, 결국에는 힘없는 국내 기업이 더 피해를 보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