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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10월 29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이건희 부회장, 김광호 본부장 등과 반도체조립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5공화국의 과학기술 지향점은 기술 국산화였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역량과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새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은 모방 의존형에서 창조적인 연구개발로 들어가야 했다.”(전두환 회고록2)

전두환 대통령은 기술패권 시대에서의 생존 수단은 과학기술 자립이라고 인식했다. 전 대통령은 “공업학교를 다니면서 기계과를 수학한 나는 여러 가지 공업제품이라든지 그런 제품을 만드는 과학기술 등에 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곤 했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이런 신념으로 과학기술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특히 정부 주도로 기술 국산화를 국가 프로젝트로 적극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산업의 쌀'로 불리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개발과 '정보기술(IT) 강국'의 디딤돌인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이다. 이 사업은 국가 명운이 걸린 일로, 한국 경제에 지진급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 사업은 정부와 산업계·연구계가 협업체제를 갖추고 공동으로 진행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들어가는 국가사업은 대통령의 결단과 소신 없이는 불가능했다.

전 대통령은 인재를 발탁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권한은 대폭 위임했다. 책임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했다. 정책은 치밀했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손삼수 웨어밸리 대표(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의 말. “전 대통령은 국가 정보화와 과학기술에 관심이 지대하셨다. 관련 전시회에는 꼭 참석하셨고, 전시회에 가면 제품을 가지고 와서 직접 사용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했다. 전 대통령의 용인술은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간섭하지 않고 관계자가 소신껏 일을 하도록 방패 역할을 하셨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한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하며 전적으로 경제를 맡겨 성장, 물가안정, 국제수지 흑자를 달성한 것이 좋은 사례다.”

1981년 7월 15일. 무더위가 차츰 기승을 부릴 때였다.

“반도체는 산업의 식량이고 연료입니다.”

정부는 이날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을 마련해 전두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이 계획은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업무를 총괄했다.

당시 정부 경제부처와 학계 등은 반도체 육성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한국은 경쟁력이 약해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전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도체 강국을 향한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당시 경제수석실 경제비서관)의 회고록 증언.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번이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산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반도체 육성계획은 반대 의견을 설득하느라 시간이 오래 끌렸다. 그런 논쟁을 벌일 시간에 반도체 개발에 더 일찍 착수했다면 4M D램 개발을 1년여 단축해서 미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12월 23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반도체기술도입 실태와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적성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이듬해인 1982년부터 청와대에 비상설 기구로 반도체공업육성추진위회를 구성했다. 청와대가 반도체 육성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이다.

1983년 초 삼성그룹이 반도체 사업 참여를 전격 선언했다.

그해 2월 8일.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이날 반도체 사업 투자를 결단했다. 이른바 '도쿄선언'이다. 이병철 회장의 결단은 삼성 미래를 환하게 밝힌 절묘한 한 수였다.

3월 15일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다는 선언문을 언론에 발표했다.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회고.

“삼성은 언제나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현 단계에서 국가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호암자전)

이후 삼성의 반도체 개발 속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83년 12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이 64K D램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64K D램 개발은 국내 최초이고,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다.

이어 1984년 10월 8일 삼성반도체통신은 256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 착수 10개월 만이었다. 1986년 7월 13일 삼성은 1M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개발 착수 10개월 만이었다. 1M D램 개발은 한국반도체산업사에 새 지평을 연 쾌거였다.

다음 단계인 4M D램 개발에는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해야 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

“4M D램 개발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관련 대기업들의 공동 연구개발이 선행해야 함은 물론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금성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반도체를 공동으로 개발할 것을 권유했다. 아울러 이 사업에 들어가는 막대한 개발 비용의 상당액을 정부에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1986년 8월 22일 오전.

“소장은 책임지고 이 과제를 완수하시오.”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안)'을 재가하면서 이같이 지시했다. 당시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 소장은 경상현 박사였다.

홍성원 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의 증언.

“전 대통령은 어떤 일을 누구에게 맡기면 그가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었다. 잘 모르는 분야는 솔직하게 '내가 뭘 아나. 자네가 책임지고 잘해'라고 말씀하셨다.”

과학기술처는 이 사업을 '대통령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공동개발에는 연구개발비 400억원과 연구기자재 구입비 479억원 등 모두 879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했다. 공동연구에는 모두 670명이 참여했다. 설계기술 100명, 기본기술 400명. 생산기술 110명, 연구관리 60명 등이었다.

1988년 2월 8일 드디어 4M D램 회로설계와 공정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4M D램 개발은 한국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저녁 반도체 개발에 참여한 연구요원들과 3사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만찬을 함께했다.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 다음 16M D램이 나오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 연구원들에게 한턱 내겠다.”고 약속했다. 전 대통령은 4M D램 개발에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다”고 했다.

체신부는 1981년 10월 20일 '국산 TDX 개발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TDX 불모지인 한국이 처음 만든, 야심에 찬 국산화 계획이었다. 정부와 연구기관·산업체가 공동 R&D 체제를 구축하고, 제품 생산은 삼성반도체·금성반도체·대우통신·동양전자통신이 맡기로 했다. TDX 개발비는 240억원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였다.

연구원들은 훗날 'TDX혈서'로 불린 서약서를 체신부에 제출했다.

“저희 연구단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전자교환기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

TDX 국산화는 체신부가 전 과정을 주관했다. 연구인력 1014명이 24시간 불을 밝히고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86년 3월 세계 10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한국을 IT 강국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김성익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의 말.

“전두환 대통령은 인재들을 등용,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국정수행 능력을 높여 나갔다.”

전 대통령은 재임 중 198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9%이던 연구개발 비율을 1986년까지 2%로 확대했다. 또 선진 과학기술 도입을 위해 과학기술처는 매년 해외 과학기술자를 초청했다. 1986년에는 컬러필름 과학기술자를 초청, 그 기술을 전수받았다. 기술 이전 로열티를 일본인은 300만달러, 미국인은 200만달러를 요구했다. 해외 과학자는 아무 조건 없이 기술을 알려주었다.

이런 보고를 받은 전 대통령은 그 과학자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했다. 이를 안 과학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생갈 수 있다“며 그날 즉시 출국했다.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국가 주도로 과학기술 국산화 시대를 연 대통령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