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플랫폼3.0]빅테크·C커머스 공습에 규제까지…안팎으로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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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환점 맞은 K플랫폼

“극소수 AI가 현재를 지배하게 되면 과거 역사, 문화에 대한 인식은 해당 AI의 답으로만 이뤄지게 되고, 결국 미래까지 해당 AI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난달 21일 열린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 GIO는 “사용자들이 하나의 키워드로 다양한 검색 결과 중에서 정보를 선택하는 검색과 달리, 바로 답을 제시하는 AI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답을 얻는 방식”이라며 “이런 AI 특성은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GIO의 통찰은 최근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전환점을 상징한다. 인터넷 검색 시대에서 AI 시대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플랫폼 패권 경쟁은 더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의 판단은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검색 시장과는 다르게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답을 제시한다. 그만큼 AI가 미치는 파급력도 커진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플랫폼(K플랫폼)'도 전환점에 서 있다. AI 시대 플랫폼은 국가 간 경쟁의 핵심이다. 또 데이터 주권을 지키고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이 전환기에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K플랫폼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전자신문은 특별기획 'K플랫폼 3.0 시대를 향해' 시리즈를 통해 K플랫폼의 상황을 점검하고, 미래 전략과 올바른 정책 방향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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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K플랫폼…글로벌 기업과 힘겨운 싸움

우리나라는 토종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례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검색은 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톡, 커머스는 쿠팡,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은 배달의민족 등 다양한 플랫폼 기업을 보유했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각자 경쟁력을 보유하면서 구글,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의 공습을 견뎌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우선 오픈AI가 촉발한 AI 열풍으로 인해 글로벌 디지털 산업이 변화하면서 K플랫폼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는 자체 초거대AI 하이퍼클로바X를 바탕으로 한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보유하고 있지만, 연간 조 단위까지는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는 올해 AI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할 계획이지만 자체 LLM보다는 소형언어모델(sLLM)을 개발하면서 최적화 된 AI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은 AI에 1000억달러(약 137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빅테크의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커머스 분야는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C커머스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쿠팡과 달리 브랜드스토어로 차별화된 커머스 사업을 갖춘 네이버, 관계형 커머스를 내세운 카카오는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다는 평가다. 오히려 C커머스의 대대적인 광고로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하지만 C커머스 진출로 인한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지난 1분기 네이버쇼핑의 거래 금액은 12조2000억원으로 전분기(12조4000억원) 보다 2000억원 감소한 것이 대표 예다. 분기 기준 네이버쇼핑 거래 금액이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더해 C커머스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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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는 전방위 플랫폼 규제

더 큰 문제는 K플랫폼을 겨누는 규제 움직임이다. 지난달 30일 개원한 제22대 국회에서는 플랫폼 규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하다. 또 기존에 디지털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의원들이 22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하면서 불확실성 또한 큰 상황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분석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플랫폼·AI·가상자산 등 디지털산업에 규제법안을 3건 이상 제출했던 의원 중 58.3%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21대 국회에서 플랫폼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국회의원 17명 중 22대 국회 당선자 수는 9명(52.9%)에 불과하다. 21대 국회에서 논의했던 맥락이 이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압도적 의석을 점유한 더불어민주당은 플랫폼 규제를 공약으로까지 내세웠다. 인기협 분석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과 자율규제 체제 정비, 거대 플랫폼 사업자 독과점 폐해와 플랫폼 사업자 불공정거래행위방지, 입점엄체 보호와 상생 강화를 플랫폼법 관련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규제 대신 진흥” 한목소리

국내 플랫폼 규제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월 '온라인 플랫폼에 특유한 독과점 규제의 필요성 여부의 검토' 논문에서 “분명한 것은 각국이 정치·경제적 상황이나 자국 플랫폼 사업자 위치 등을 고려해 그에 맞는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라면서 “국내에서 플랫폼에 특유한 독과점 사전규제 입법이 필요한 논리적, 현실적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는 물론 국회에서도 여전히 플랫폼 규제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이 상당하다”면서 “다분히 국내 플랫폼의 여론 영향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까지 이뤄지면 국내 플랫폼 생존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세계 플랫폼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고 국내 플랫폼에 대한 진흥책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AI 산업은 수십조원을 부을 수 있는 미국 기업이 싹쓸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우리나라도 이 같은 상황을 머리 속에 넣고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익이냐, 소비자의 이익이냐, 중소기업의 권익이냐 등 플랫폼에 대해 어떤 가치를 우선할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