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야당이 강행처리한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후 10번째다.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에게 도전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특검 임명권까지 박탈한 삼권분립의 원칙까지 훼손한 특검법'이라고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 재의요구안이 의결되자, 이를 재가했다.
정부는 △여야 협의 없이 야당 강행 처리 △야당 독점적 특검 추천권 등 '독소조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한 총리는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국회의 입법권이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원칙에 반한다면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한 내에서 의견을 개진할 책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채상병특검법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해 7일 정부로 이송됐다. 윤 대통령도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바 있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관련 질문을 받고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수사 결과를 보고 만약 국민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삼권분립 원칙상 특검은 대통령의 임명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특검법은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게만 독점 부여했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원천적 박탈했다”고 말했다.
채상병특검법 국회 통과를 강행 처리한 민주당은 28일 국회 재표결을 앞두고 대국민 호소전에 나섰다. 특히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탓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국민의 명령을 무시한 행태'라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민주당은 25일 소속 의원과 22대 당선인, 당원과 함께 범국민대회를 열고 정부를 규탄할 방침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해병대원특검법 재의요구 규탄 야당·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이 끝내 국민과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 국민은 이번 총선을 통해 명확하게 윤 대통령에게 명령했다”면서 “그러나 이 정권은 오히려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도전하는 반 국민적 반 국가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책임을 민주당의 입법 독주로 돌렸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쟁만을 위한, 여야 합의도 없는 법안에 대한 헌법상 방어권 행사는 존중돼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 권한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일도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 재표결시 제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21대 현 국회 상황에서 채상병특검법은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17표 이상 나오지 않으면 부결돼 폐지된다. 국민의힘 내에선 김웅·안철수 의원 등이 가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