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24〉과기처 “인공지능 등 6대 산업 집중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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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AI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987년 6월 25일. 과학기술처가 이날 국내 처음으로 인공지능(AI) 같은 미래기술을 중점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전두환 대통령이 주재한 1987년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다.

과학기술처는 확대회의에서 추격형 기술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 미래기술 개발을 선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보고했다. 과학기술처는 또 AI와 갈륨비소 반도체 등 기초과학과 연계한 과학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AI가 정부의 육성 미래 기술로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AI 육성의 서곡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 개발은 정부 힘만으로는 부족하며, 기업이 기술개발 주역임을 인식해서 미래기술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면서 “기술개발에 따른 민간기업의 위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전 부처는 기업의 과학기술 개발을 과감하게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2024년 4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AI 글로벌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AI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AI·반도체 분야에 오는 2027년까지 모두 9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AI 분야의 G3 달성과 AI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실현하기 위해선 민·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지난 4월 4일 출범한 AI전략최고협의회를 앞으로 국가AI위원회로 격상, AI국가 전략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를 비롯한 기업 대표들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과학기술은 과거와 현재가 지속해서 땀흘린 합작품이다. 지금 세계 각국 간 AI 기술패권 경쟁은 치열하다. 그런 점에서 AI와 같은 미래기술은 지속성과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승패의 관건이다. 이건 역사의 생생한 교훈이다.

다시 37년 전, 청와대로 돌아가 보자.

“(전두환)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1987년 6월 25일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 주재로 1987년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는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이 '과학산업 육성'과 허신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전 GS리테일 명예회장)이 '민간산업계의 기술혁신 향상'을 각각 보고하고 이어 대통령 말씀 순으로 진행했다.

기술진흥확대회의에는 이한기 국무총리를 비롯해 전 국무위원, 국회와 정당대표, 과학기술계, 산업계, 언론계 대표 등 220명이 참석했다.

“지금부터 1987년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과학산업 육성' 보고를 통해 “정부는 새로운 산업혁명을 견인할 미래기술인 AI와 갈륨비소 반도체, 극한기술 등 6대 과학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면서 “과학산업연구개발 촉진법 제정과 과학산업연구단지 조성, 기초과학 연구소 설립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오는 21세기 선진과학기술 입국 실현을 위해 현재 모방형 기술개발 체제를 벗어나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과학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면서 “이를 위해 6대 과학산업으로 △AI △갈륨비소 반도체 △고온초전도 재료 △극한 기술 △레이저 광기술 △항암제 등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 “연내 과학산업연구 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올해 안에 기초과학연구소를 설립해서 1988년부터 가동하며,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수도권과 중부·서부·동남권 등 4대 과학산업연구단지를 조성해 나가겠다”면서 “산·학·연 간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특정 연구 사업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참석자 가운데 일부 인사는 “AI가 뭐야?”라고 옆사람과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뒤를 이어 허신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이 '민간산업계의 기술혁신 향상'을 보고했다.

허 회장은 보고를 통해 “경제4단체와 기술진흥협회가 역할을 분담해서 2000년대 기술선진국 진입을 위해 민간기업이 앞장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허 회장은 “민간기업의 기술개발 투자를 2001년까지 현재보다 18배 많은 13조9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산업연구 인력도 8배인 11만명으로 확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국내 기술혁신 시대를 선도한 기업인이었다. 1966년에는 국내 합성세제의 시초인 '하이타이'를 개발, 우리나라 '빨래 문화'를 바꾼 '가루비누 시대'를 연 주인공이었다.

허 회장은 금성전선, 럭키, 금성사, 금성정밀 등의 사장을 두루 역임하면서 자율경영으로 LG그룹을 21세기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켰다. 1979년에는 금성사(현 LG전자) 사장으로 취임해 컬러TV, VCR, 컴퓨터 등 가전제품을 생산·공급했다.

당시 과학기술처가 보고한 AI, 갈륨비소 반도체 등은 일반인에게 외계에서 온 화성인의 말처럼 난해하게 들렸다.

당시 과학기술처 기술정책실 관계자의 말. “과학산업은 창의적 과학과 지식, 고도의 기술이 서로 밀착한 새로운 산업을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1980년대 들어 추진한 첨단기술 개발이 선진국에서 기초 기반 기술을 들여와 국내 개발을 추진하던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기초기술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개발 전 과정을 우리 기술로 자립하겠다는 게 당시 정부의 기본 방침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초·중·고등학교 과학교육을 강화해서 우수 과학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장·단기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이어 “기업들이 미래 과학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과학기술 개발에 공이 큰 김호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전도홍 동양노즐공업 사장, 남궁혁 두산개발 대표 등 3명에게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또 이인원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김인술 연합정밀대표 및 강달문 삼능공업 사장 등 3명에게 철탑산업 훈장, 김형근 금산흥업사장과 한진호 훼리이트 사장 등 2명에게 석탑산업 훈장을 각각 수여하고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최영환 전 과학기술처 차관(당시 과기처 기술정책실장)의 회고. “1980년대 초 첨단기술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기술력 확보와 기술혁신의 뒷받침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강력한 '기술 드라이브 정책'이 절실했다. 기술진흥확대회의는 이런 시대적인 배경 아래 탄생했다. 과학기술처는 막강한 전 대통령을 뒤에 업고 기술진흥확대회의라는 장(場)을 통해 소망했던 대로 과학기술 주도 정책 의지를 한껏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런 장치가 있었기에 수많은 과학기술 지원책과 유인책 등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는 급증했고, 민간기업 기술개발도 크게 활성화 했다.”

과학기술처가 이날 보고한 6대 과학산업 육성책은 아래와 같다.

△AI 분야=1991년까지 AI 응용 기반 확보를 목표로 소프트웨어(SW)와 응용기술 등 확보. 2001년까지 3단계에 걸쳐 1조원 투자.

△갈륨비소 반도체=1995년까지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10배 빠른 갈륨비소 초고속 접적회로(IC) 양산 확립.

△극한기술 분야=과학발전의 필수 기반 기술이란 점을 감안해 전문인력 양성 등 중장기 개발작업을 진행하고 초고온·고압·극저온, 초청정 기술을 개발해 반도체 제트엔진 등에 활용

△고온 초전도재료 분야=서울대·KAIST·표준연구소 등에서 개발한 기술을 1988년부터 측정연구과제로 선정해 1991년까지 기술혁신 효과가 큰 특정연구사업으로 초전도 재료를 개발, 에너지 저장과 자기부상 열차에 응용

△레이저 광기술 분야=레이저산업은 광통신, 광디스크 등과 같은 새로운 산업. 1991년까지 10㎾급 초강력 레이저를 개발, 초정밀 전자핵융합로 개발에 활용.

△항암제 =항암제로 각광받는 인터루킨2를 개발, 항암 치료에 사용.

정부의 AI 등 6대 과학산업 육성은 기술패권에 대비한 미래기술 자립 전략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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