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고속성장에도 투자는 회피
韓 영업 위주 사업 한계 원인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내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연구개발(R&D) 투자와 고용은 외면하고 있다. 성장에 따른 사회적 기여는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전자신문이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 10곳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이 최대 4배 성장했지만 R&D 투자와 고용은 제자리걸음 혹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 제약사 중 매출 1위인 한국화이자는 2020년 매출이 3918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1조6017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영업이익 역시 2020년엔 71억원 적자였지만 지난해 638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간 R&D 비용은 73억원에서 100억원으로, 4년 새 27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MSD 역시 2020년 매출액 4846억원, 영업적자 58억원에서 지난해 매출액 7609억원, 영업이익 273억원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R&D 비용은 2020년 150억원에서 지난해 92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오츠카제약 등도 2020년 대비 지난해 매출이 30% 이상 성장했지만, R&D 투자는 4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 나기도 했다.
국내 임직원 수도 사실상 정체거나 감소하고 있다. 영업직군 중심으로 일부 채용이 이뤄진 데다 이직률도 높아 고용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요 10개 다국적 제약사 중 2020년 대비 지난해 임직원 수가 늘어난 곳은 한국화이자, 노보노디스크제약,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BMS 등 다섯 군데다. 이중 노보노디스크제약이 4년 새 106명이 증가해 가장 많이 늘었을 뿐 한국아스트라제네카(46명), 한국화이자(44명), 한국BMS(9명), 한국베링거인겔하임(4명) 등 매출 성장에 비해 고용은 소극적이었다.
나머지 다국적 제약사는 임직원 수를 대폭 줄였다. 한국MSD는 2020명 임직원 수가 706명이었지만 지난해 466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국노바티스(534명→475명), 한국얀센(521명→453명), 한국로슈(309명→249명), 한국오츠카제약(391명→376명) 등은 최대 70명 가까이 감소했다.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투자에 인색한 것은 영업 위주의 사업 한계에다 한국 시장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가 본사로부터 의약품을 받아 국내에 유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R&D 기능이 거의 없다 보니 양질의 고용 창출이 어려운 구조다. 또 대부분 연간 100억원 가까이 R&D 투자를 한다지만, 이마저도 본사 신약 개발 프로젝트 중 일부 임상시험을 위탁받아 한국에서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유행 이후 물류·운송비 폭등과 우리 정부의 지속적인 약가 인하 정책은 투자 외면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제약사를 움직일 국내 투자유인 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제약 업계 한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의 R&D 투자는 대부분 본사 위탁을 받은 임상시험인데, 최근 이마저도 중국 등으로 돌려 국내 임상시험도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