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USB 케이블이라면 길이가 길수록 비싼 게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평소 케이블을 구매할 때 용도에 따라 적절한 길이를 고르게 됐다. 15cm짜리 짧은 케이블은 보조배터리와 스마트폰을 연결하기 적합하고, 1m짜리 케이블은 스마트폰을 컴퓨터에 연결할 때 주로 사용한다. 길이가 2m에 달하는 케이블도 있는데 이런 제품은 충전기에 연결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좋다.
어느 날 '길이가 긴 케이블만 구매하면 더 다양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케이블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사용하긴 어렵지만, 긴 케이블을 둘둘 말면 보조배터리에 연결해도 큰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에 스마트폰을 연결할 때도 2m짜리 케이블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케이블 길이가 길어질수록 성능이 떨어지거나 기능이 제한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길이와 기능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긴 케이블, 충전 속도 느리지만 영향 미미해
먼저 '길이가 긴 케이블을 사용하면 충전 속도가 느려진다'라는 속설에 주목했다. 이론상 틀린 말은 아니다. 전기가 통하는 금속 케이블은 얇고 길수록 저항이 커진다. 즉, 길이가 긴 케이블의 전력 전송 효율이 짧은 케이블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있다.
다행히 사용자가 신경 쓸 정도로 충전 속도가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는다. 길이가 수백 m에 달한다면 모를까, 길이가 1~2m에 불과한 케이블은 충전 속도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저항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삼성SDI는 케이블 길이에 따른 충전 속도를 비교 테스트했다. 배터리 잔량이 0%인 스마트폰 두 대를 준비한 다음 한 대는 15cm 케이블로, 다른 한 대는 5m 케이블로 충전했다.
충전을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자 15cm 케이블이 연결된 스마트폰은 70%, 5m 케이블이 연결된 스마트폰은 68%까지 충전됐다. 눈에 보이는 차이는 있었지만 실제 사용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보긴 어렵다. 삼성SDI는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케이블 길이가 짧고 내부 선재가 두꺼울수록 충전 효율이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조건 길고 두꺼운 케이블이 충전에 유리하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길이와 두께만 충전 속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재를 구성하는 금속의 순도가 높을수록 저항이 낮아 충전 효율이 오른다.
데이터 전송 속도, 케이블 길이보다는 파일·인터페이스 영향 커
한편 '길이가 긴 케이블을 사용하면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진다'라고 주장하는 소비자도 있다. 충전 속도와 마찬가지로 이론상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길이에 따른 데이터 전송 속도 차이는 체감할 수 없다. 케이블의 저항보다는 파일의 용량과 수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썬더볼트3 케이블을 사용한다면 길이에 따라 데이터 전송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썬더볼트3는 최대 40Gbps 전송 속도를 지원한다. 그런데 길이가 긴 썬더볼트3 케이블 중에는 전송 속도가 20Gbps에 불과한 제품도 있다.
전송 속도가 다른 이유는 썬더볼트3 케이블이 '패시브'와 '액티브' 두 종류로 나뉘기 때문이다.
전송 속도가 빠르면 전송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호 무결성'이 떨어진다. 케이블이 길어지면 그만큼 데이터가 누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반적인 썬더볼트3 케이블은 길이가 0.8m 이하일 땐 제 속도를 내지만, 이보다 길어지면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전송 속도를 20Gbps로 제한한다. 이를 패시브 케이블이라고 부른다.
액티브 케이블에는 '리타이머'라는 특수 회로가 중간중간 들어있다. 데이터가 누락되지 않도록 신호를 다시 만들어 전달하는 중계기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케이블이 길어져도 전송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긴 케이블을 사용했더니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졌다고 주장하는 소비자는 썬더볼트3 패시브 케이블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길고 속도 빠른 썬더볼트3 케이블은 가격도 비싸다
길이가 긴 썬더볼트3 케이블이 필요하다면 40Gbps 전송 속도를 지원하는 액티브 케이블을 구매하는 게 좋다. 단, 이런 제품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 한 모바일 액세서리 제조사가 출시한 썬더볼트3 케이블 가격을 확인해 보니 0.8m는 4만 원, 2m는 10만 원대 초반으로 가격 차가 매우 컸다. 길이가 긴데 이상할 정도로 저렴한 썬더볼트3 케이블은 역시나 모두 전송 속도가 절반으로 제한된 '패시브 케이블'이었다.
한편 썬더볼트 케이블을 USB 케이블 대신 사용하는 소비자도 있다. 썬더볼트 케이블은 연결된 단자 종류를 인식해 USB, 디스플레이 출력, 충전 등 적합한 기능을 제공하며 USB-C 규격 단자를 채택해 USB 케이블 대신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상황에서 원하는 성능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썬더볼트3 액티브 케이블은 USB 3.0과 3.1 버전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 단자에 연결할 경우 하위 버전인 USB 2.0 모드로 동작해 전송 속도가 크게 떨어진다. USB 2.0의 전송 속도는 480Mbps로 USB 3.0(5Gbps)이나 3.1(10Gbps)보다 훨씬 느리다. 썬더볼트3 최대 속도와 비교하면 1% 정도에 불과하다.
널리 호환되는 케이블 필요하다면 '썬더볼트4' 권장해
썬더볼트3 케이블을 USB 3.0이나 3.1 단자에도 연결할 일이 있다면 액티브 케이블 대신 패시브 케이블을 사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패시브 케이블은 길이가 길면 속도가 느리다. 단점을 모두 해소한 케이블을 원한다면 한 단계 높은 썬더볼트4 케이블을 알아보자. 썬더볼트3를 포함한 하위 규격 인터페이스를 완벽하게 지원할 뿐만 아니라, 길이 제약을 극복해 최대 2m 길이에서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한편 썬더볼트와 비슷한 규격으로 알려진 'USB4' 케이블을 구매할 땐 여전히 길이에 신경 써야 한다. USB4가 썬더볼트3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터페이스다 보니 길이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이다.
길이가 1m 이하인 USB4 케이블은 대부분 40Gbps 속도를 지원하지만 길이가 2m인 케이블은 최대 속도가 20Gbps로 제한된다. 대신 길이에 관계없이 USB 하위 규격을 완벽하게 지원하므로 케이블 종류에 따라 USB 3.0·3.1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