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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욱 한국광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양자과학연구소장)

빛은 우주가 탄생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인류가 다른 종과 달리 특별한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 데는 '인류의 첫 번째 빛'인 불의 역할이 컸다.

근대 과학 탄생도 망원경과 같은 광학 도구를 이용해 천체 운동을 관측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우리에게 친숙한 뉴턴, 데카르트, 영, 맥스웰,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우주와 자연에 대한 궁금증만큼이나 빛은 특별한 탐구의 대상이 됐다.

빛이 입자인지 아니면 파동인지를 따지는 정체성 논쟁은 19세기를 지나면서 파동설로 굳어지는 듯했다. 전기와 자기에 대한 많은 연구가 맥스웰에 의해 집대성되면서 빛의 정체는 전자기파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빛이 파동임을 굳게 믿은 19세기 과학자들은 빛 전달에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매개체를 '에테르(ether)'라고 지칭했다. 19세기 후반에 마이켈슨과 몰리는 정밀한 광학 도구를 이용해 에테르의 존재를 입증하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그 실험으로 기대와는 달리 우주 공간은 비어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안하고, 더 나아가 광전효과로 빛의 입자성을 주장했다. 막스 플랑크가 주장한 빛의 양자설과 함께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가진다는 이중성이 밝혀지면서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태동에 기여했다.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원자나 분자의 전자 궤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인류의 세 번째 빛'인 레이저가 탄생했다. 1960년 5월 16일이었다. 지금도 유네스코는 메이먼이 최초로 레이저 발진에 성공한 그 날을 '세계 빛의 날'로 지정해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하는 빛과 광기술의 의미를 기리고 있다.

인류의 세 번째 빛인 레이저가 개발된 이듬해, 1961년 첫 양산을 시작한 반도체 덕분에 인류는 역사상 가장 눈부신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으로 설명되는 반도체의 발전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 역시 바로 빛이었다.

반도체 구조를 웨이퍼에 그리는 과정인 리소그래피 기술은 빛을 사용한다.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나노 구조를 정밀하게 제작하는 기술의 한계는 빛의 파장에 달렸다. 심자외선(DUV)보다 파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인 극자외선(EUV) 광원이 개발되면서 반도체 시장은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치는 고출력 탄산가스 레이저, 레이저 플라즈마, 초정밀 반사광학계 등 레이저 및 광기술의 집약체다. 이 분야에서 20년 이상 이어진 기술 개발 경쟁의 승자가 된 ASML은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슈퍼을'이 됐다.

레이저와 광기술은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전략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core) 기술이다. 중국이 지난 수 십 년간 집중해온 과학기술 굴기의 핵심에 레이저와 광기술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20세기부터 중국이 레이저와 정밀 광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할 때 서방국가들은 가난한 공산국가의 무리한 정책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를 통해 광소재 등 핵심 기반분야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한 중국은 레이저 기반 광통신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미래 전략기술인 양자광원을 이용한 통신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이 수여된 레이저와 광기술은 첨단 과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산업과 국가의 핵심 전략기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광기술 발전으로 국내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일부 분야는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키고 꾸준히 발전시켜야 할 핵심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더 늦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영욱 한국광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양자과학연구소장) yujung@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