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기술주권 확보, 과학기술인 성장 지원이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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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선보였던 오픈AI의 또 다른 인공지능(AI) 모델 '소라(Sora)'가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단 2줄의 텍스트 입력만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 같은 영상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 여겼던 창의성마저도 AI에게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가속 컴퓨팅과 생성형 AI가 임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했다”며 “앞으로 5년 내에 AI가 인간이 치르는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에서 첨단 신기술 도입과 디지털화로 향후 5년간 69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83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져 1400만개의 일자리 순감소를 유발할 것으로 전망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로봇과 AI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태세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의 모든 요소가 과학기술 수준과 직결되다 보니 세계 주요국은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혁신경쟁법' '미국경쟁법' 가결과 함께 2026년까지 최소 2000억달러를 신기술 확보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제14차 5개년 규획'을 수립해 7대 과학기술과 8대 산업을 집중 육성 대상으로 선정하고, 10년 전 대비 약 4배 증액된 3조800억위안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2년 미래 성장과 기술 주권 확보를 목표로 12대 국가전략기술을 발표했다. 반도체, 우주, 양자와 같은 혁신 기술로 세계적인 초격차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기술력이 우수한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교류·협력을 중점 과제로 추진 중이다. 실제 우주항공청 개청,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글로벌 R&D 특별위원회 출범 등 과학기술 선진화와 국제 협력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기술적 우위가 국제정치의 패권을 결정하는 '기정학(技政學) 시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과학기술 정책의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인재 유입 부족과 경직된 제도권 교육 시스템으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점차 심각해지는 인구 절벽에 더해 학생들의 의대 쏠림과 이공계 기피·이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의 첨단 분야 육성 방침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서울대 첨단융합학부가 2023년도 14.1%의 미등록률을 기록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의 석사과정 충원율도 60~80%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또 정규교육으로 대변되는 제도권 교육은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 분야별 전문 인재를 키워내는 데 한계를 보인다. 현장 과학기술 인재들을 위한 재교육 시스템이 부족한 것도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식의 반감기' 저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공학 분야의 지식 반감기가 20세기 초 40여년에서 20세기 말 10여년으로 단축됐다고 말한다. 공학 분야도 이제는 10년 전 지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맥킨지는 2018년 '스킬링 챌린지'라는 보고서에서 조직이 요구하는 기술과 구성원들이 보유한 역량 간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래사회 요구 역량과 실제 보유 역량 간 차이가 벌어지며, 기존 인재들이 새로운 환경과 직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기술을 습득하고, 숙련도를 강화하는 것이 인재 개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과학기술의 핵심 주체인 과학기술인을 생애 주기에 따라 전략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첨단 인력으로의 성장을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과학기술인의 재역량화(Re-skilling) 및 고역량화(Up-skilling)는 미뤄선 안 될 시대적 과제다. 그동안 이공계 인력은 학교가 전담해 육성하고, 현장에서는 전문가들이 스스로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신기술 혁명 속에서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재교육 시스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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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KIRD 과학기술 인재개발 활동조사

실제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이 과학기술 분야 재직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과학기술 인재개발 활동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9%가 경력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경력 개발의 이유로는 '전문가로의 성장을 위해(72.5%)' '최신 트렌드 변화 대응을 위해(54.1%)' 등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시간 부족과 여건 미흡에 따라 현재의 경력 개발이 불충분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37.1%에 달하는 실정이다.

선진국은 이미 과학기술 인재 재교육 관련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국립과학재단의 'ExLENT' 프로그램을 통해 성인 학습자의 신흥 분야 역량 향상을 지원하고 있고, 영국연구혁신기구는 'The TALENT' 사업을 통해 산업군별 숙련 기술자를 재교육하고, 최신 동향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우리도 지난해 12월 '국가전략기술 인재 확보 전략'을 마련해 정부 차원 산업계 재직자 경력 전환 교육을 강화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기존 대학 중심의 학위 과정뿐만 아니라 기업 사내 대학원 형태의 공동학위 확대, 연구기관 연계 석·박사 과정 운영 등 과학기술 인재의 지속적인 재교육을 위한 산·학·연·관 전체 차원에서 사회적 관심과 체계적인 재교육 시스템 구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지금의 결과는 우리 국민의 근면과 성실, 단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밑바탕에는 '과학입국(科學立國)'의 공유 가치가 있었다. 어느덧 인류는 기술 패권과 AI 대전환의 21세기를 살고 있다. 과학기술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 속에서 국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다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인 육성과 성장을 체계적으로 돕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장 baetmin@kird.re.kr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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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원장

경북고,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원자력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과학기술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과기정통부, 산업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선임행정관, 국립중앙과학관장,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장을 역임하며, 2023년 8월 제6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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