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16〉SW개발촉진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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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소프트웨어 산업인의 날 기념식이 2023년 11월 27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렸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대통령 표창 유공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전자신문 DB

속전속결이었다. 1987년 10월 16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소프트웨어(SW)개발촉진법과 항공우주촉진법 등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상희 당시 민정당 정책조정실장직무대리는 이날 “이들 과학법안은 미래 한국을 이끌 과학 분야 기초를 다지기 위한 입법”이라고 설명했다.

SW개발촉진법안은 2000년대 정보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SW 개발을 촉진하고 외국 제품 복제 수준인 국내 SW산업을 진흥시키는 등 대외 SW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이에 앞서 같은 해 2월 2일 SW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관련법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처는 SW산업이 두뇌집약 산업인 데다 고부가가치 무공해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 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키로 하고 그해 7월부터 시행하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과 별도로 SW육성법을 마련해서 1988년부터 시행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SW육성법 제정은 컴퓨터업계의 숙원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정보산업협회(현 한국정보산업연합회)는 SW산업육성법안에 정보처리 진흥기금 설치와 프로그램 준비금제, SW개발비 산정 기준 등을 포함해 줄 것을 과학기술처에 건의했다.

협회 당시 고위 관계자 K씨의 증언. “당시 그해 7월부터 시행하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외국 SW를 보호하는 게 핵심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장 개발을 앞두고 국내 SW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법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가 거셌습니다.”

이 법안은 정부입법이 아닌 의원입법으로 추진했다. 법안 명칭도 SW개발촉진법으로 변경했다.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말. “정부 입법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법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아 국회로 법안을 넘겨야 했습니다. 그 당시 SW육성법안은 상공부, 체신부, 경제기획원 등 관계 부처 간 이해가 엇갈려서 합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의원입법은 의원 10명 이상 찬성하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습니다.”

민정당의 일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민정당은 10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가 끝나자 이날 오후 곧바로 SW개발촉진법안을 의안번호 120548호로 국회에 접수했다.

법안 발의자는 박종문 의원(전 농수산부장관), 김문기 의원, 이진 의원 등 3명이었다. 법안에 찬성한 의원은 노태우, 채문식(전 국회의장), 이한동, 이종찬, 권익현 등 37명이었다.

박종문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를 “SW의 효율적인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고 SW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업계의 충격을 줄이는 동시에 국내 SW 기술 개발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SW를 지원·육성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법안은 10월 22일 오후 2시 열린 경제과학위원회로 넘어갔다. 염길정 경제과학위원장이 위원회 개의를 선언했다. “경제과학위원회를 개의하겠습니다. SW발전촉진법을 제안하신 박종문 의원 나오셔서 제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종문 의원이 단상에 나가 제안설명을 했다. “이 법안은 정보산업의 근간이자 모든 산업의 뿌리이고 핵심인 SW 개발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산업 고도화와 사무처리 효율화, 국민복지 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SW는 단순한 캄퓨터 프로그램 기술 차원을 넘어 사회와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고급인력을 양성해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사무 자동화의 필수 요소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SW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대외 기술장벽을 갈수록 높이 쌓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발언을 이어 갔다. “우리가 SW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고 국내 SW업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SW산업을 지원·육성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 정보화 물결에 동참하고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정보산업의 근간인 SW의 개발 촉진이 시급합니다. SW 육성이 산업구조 선진화와 복지국가 구현을 위한 길임을 감안, 이 법률을 만장일치로 의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날 경제과학위원회에는 과학기술처에서 권원기 차관, 신만교 기획관리실장, 박승덕 연구개발조정실장, 최영환 기술정책실장이 참석했다. 형식은 의원입법이지만 주무 부처는 과학기술처였다.

10월 30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장.

장성만 국회부의장이 사회봉을 잡았다. “의사 일정 제13항 SW개발촉진법안을 상정합니다. 경제과학위원회 양경자 의원 나오셔서 심사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경자 의원이 단상으로 나와 심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 법률안은 국내 SW산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개발을 촉진해서 SW시장 개방에 따른 충격에 대처하고 SW 자생력과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의원님께 배포해 드린 유인물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제과학위원회에서 심사 보고한 대로 심의 의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성만 부의장이 회의를 진행했다. “SW개발촉진법안에 대해 이의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가결했음을 선포합니다.”

불과 보름 만의 초스피드 입법이었다. 국회는 이 법안을 11월 19일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12월 4일 공포번호 3984호로 SW개발촉진법을 공포했고 1988년 7월 1일부터 시행했다.

SW개발촉진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상공부 장관, 체신부 장관, 관계행정기관장과 협의해 SW 개발을 촉진하고 원활한 수요 창출을 위한 기본시책을 강구한다.

△정부는 SW 개발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술개발촉진법 제8조 3의 규정에 의한 특정연구개발사업, 공공발전법 제13조 규정에 의한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 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9조 규정에 의한 전산망기술개발 사업과 연계해 SW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정부는 SW 개발 사업을 실시하는 사람에게 소요 금액 전부 또는 일부를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프로그램 품질 향상과 신뢰성 확보, 유통촉진 등을 위해 프로그램에 관한 품질보증 기준을 정하고 이의 시행을 권장할 수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적절한 대가에 의해 SW가 개발·유통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SW개발비 산정 기준을 정하고 이의 시행을 권장할 수 있다.

△SW 개발자가 공동으로 SW 관련기관, 설비와 정보 등을 일정 지역 내에 집중해서 SW 개발을 촉진하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경우 정부는 해당 지역을 SW공동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이의 지원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할 수 있다.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가 SW 진흥을 위한 SW 개발자에 대한 공제사업, 개발한 SW 권리를 취득하거나 SW를 보급하는 사업 등을 할 수 있다.

△정부는 SW와 시스템 개발과 이용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세제·금융·행정상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기술 진흥, 인력 양성, 홍보 등을 수행하는 단체를 지원·육성할 수 있다.

이 법 공포 후 1988년 4월 7일 한국소프트웨어(SW)산업협회가 출범했다. 초대 회장에는 박병철 쌍용컴퓨터 대표가 취임했다. 한국SW산업협회는 1996년 12월 4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제1회 SW의 날 선포식을 가졌다.

김택호 당시 회장의 증언. “정부가 1987년 12월 4일 SW개발촉진법을 제정했습니다. SW산업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업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법 제정일인 12월 4일을 SW의 날로 제정한 것입니다.”

이후 2000년 12월 SW의 날 명칭을 SW산업인의 날로 변경해 매년 유공자 시상 등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SW산업협회 현 회장은 조준희 유라클 대표이사 회장이다. 역대 회장 가운데 최장수 회장은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다. 조현정 회장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3연임했다.

정부는 2000년 1월 21일 SW개발촉진법을 전부개정하고 명칭도 SW진흥법으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법은 한국SW산업 도약의 새 질서이자 SW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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