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LFP·원가절감' 타고 中 이차전지 소부장이 온다

삼성SDI, LFP 장비 도입 거론
전극·조립 공정에도 채택 검토
국내 업계 '단가 인하' 지렛대
'탈중국' 흐름 역행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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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 업체 A사는 지난달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울산에 구축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라인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설명회에는 전과 다른 초대 손님이 눈에 띄었다. 우시리드, 항커커지, 헝이능 등 중국 배터리 장비 업체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던 것이다. 이들은 임직원 7~8명에 통역까지 동행해 설명회장을 가득 채웠다.

# 배터리 업체인 B사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기차 시장 침체로 떨어지고 있는 수익성을 방어해야 하는데, 해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회사는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산 장비나 부품 사용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 중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산 활용은 양극재 전구체와 분리막 등 소재에 집중돼 있었는데, 이제는 장비와 부품으로 본격 확대되는 양상이다.

◇삼성SDI, 중국산 LFP 장비 도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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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겸 울산시장(오른쪽)과 최윤호 삼성SDI 대표가 지난달 '산업단지 개발 및 배터리 관련 생산공장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울산시)

삼성SDI는 울산에 건설하는 신규 배터리 공장에 중국산 장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울산에 구축되는 LFP 배터리 공장 활성화 장비 공급사로 중국 헝이능(HIN)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삼성SDI가 활성화 공정에 중국 장비를 쓰는 건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이례적인 일이다. 국내 한 장비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중국 리릭로봇 장비를 연구개발(R&D)용으로 반입한 적은 있지만 양산 라인에는 중국 장비를 많이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성SDI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울산 LFP 공장 전극과 조립 공정에도 중국산 장비 채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는 생산 공정별로 크게 △전극 △조립 △활성화 공정으로 구분된다. 전극은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작업이며, 조립은 배터리 형태에 따라 전극을 자르거나 쌓는 것을 뜻한다. 활성화는 전류를 흘려 충·방전을 반복하면서 이차전지로서 기능을 부여하는 역할이다.

배터리 제조에 있어 전극과 조립 공정은 '전(前)공정', 활성화는 '후(後)공정'으로 분류된다. 전극과 조립 공정은 배터리 제조에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SDI는 후공정뿐만 아니라 전공정에도 중국산 장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SDI에 앞서 중국 항커커지가 SK온에 활성화 장비를 공급한 바 있다. SK온과 포드가 북미에 합작한 법인(JV) 블루오벌SK에 납품해 업계 화제를 모았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미 배터리 공급망에 중국산 장비가 진입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제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핵심 공정까지 중국산 장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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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비사 항커커지 본사. (사진=항커커지)

◇소재 이어 장비까지 중국산 활용 확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중국산 장비 활용이 늘어나는 이유는 먼저 LFP 배터리가 꼽힌다. 중국이 LFP 배터리를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리튬과 인산철을 주 재료로 사용하는 이차전지다. 니켈·코발트·망간을 주로 사용하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그동안 성능을 우선해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 등 배터리 경쟁국과 차별화를 위해 LFP 배터리를 육성했다.

초기 전기차 시장은 삼원계 배터리를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저변이 확대되면서 LFP 배터리 수요가 커졌다. 보다 대중적인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저렴한 배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수요 확대에 LFP 대응에 나섰는데, 기술력과 양산 경험을 쌓은 곳을 찾다보니 중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FP는 원래 중국이 잘하는 배터리여서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수익성 이슈가 맞물리면서 중국 장비 도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분위기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둔화로 수익성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부터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최고경영자가 전면에 나설 정도로 원가 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산 장비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부상했다. 중국 기업들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현지 내수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형성,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일부 품목은 가격이 국내 기업의 반값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차전지 中 의존도 더 커지나

문제는 국내 이차전지 산업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소재에서 중국산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음극재 핵심 소재인 흑연은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 우리나라는 90% 이상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BTR·즈천과기·샨샨 등의 중국 소재사가 국내 배터리 업체에 흑연 기반 음극재를 공급한다.

양극재의 경우 중간재인 전구체는 90% 이상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최대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의 경우에도 전구체 내재화율이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분리막과 전해액도 사정은 비슷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중국산 제품 채택 비중이 전해액이 70%, 습식 분리막은 80%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식 분리막도 미국산을 활용하는 삼성SDI와 달리 LG에너지솔루션은 전량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산 소부장 활용이 국내 업계에 단가 인하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국내 소부장 업체를 대상으로 단가 인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부 협력사에 장비 단가를 20% 이상 낮춰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온도 다음 발주 때는 이전 계약보다 공급 가격을 약 15% 하향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회성보다는 시장 및 기술 변화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산 소부장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산 소부장을 통한 원가 절감이 국내 업체에는 '딜레마'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 규정에 따른 탈중국 흐름과 역행하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대비 기술력이 떨어질뿐만 아니라 납기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인 배터리 생산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소부장 확대를 놓고 원가 절감이 중요한 경영진과 제품 생산을 책임지는 실무 부서의 의견 충돌이 있다”며 “가격 이점을 넘어 기술, 납기와 국내 배터리 생태계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