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을 어떻게 충전할지 고민하다 컴퓨터 USB 단자에 연결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스마트폰용 충전기에 연결했을 때보다 충전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그래서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절전 모드를 활성화하고 화면 밝기를 줄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자리에 고속 충전기를 마련해 스마트폰을 빠르게 충전한다. 하지만 충전할 물건은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무선 이어폰, 무선 마우스, 텀블러 살균기, 탁상용 선풍기처럼 때가 되면 충전해야 하는 제품이 늘었다. 모든 제품을 충전기에 연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또다시 컴퓨터 USB 단자의 신세를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느리게 충전하던 모습이 떠올라 어떤 제품을 연결해야 할지 고민됐다.
컴퓨터 USB 단자의 충전 속도로는 어떤 제품까지 무난하게 충전할 수 있을까. USB 단자의 충전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먼저 알아봤다.
USB 단자 전압·전류 낮아 스마트폰 충전 느려져
충전 속도는 단자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전력을 기기로 전송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일반적으로 '출력'이라 부른다. 출력은 전압(V)에 전류(A)를 곱한 값으로 단위는 와트(W)를 사용한다. USB 표준에 따르면 컴퓨터에 탑재한 USB 2.0 단자의 최대 전압은 5V, 최대 전류는 0.5A다. 즉, 최대 출력은 2.5W다. USB 3.0과 3.1 단자는 최대 전압 5V, 최대 전류 0.9A를 지원하므로 출력은 최대 4.5W다.
스마트폰 충전 속도가 느린 이유는 여기서 드러난다. 최근 출시된 삼성 스마트폰은 25W나 45W 초고속 충전을 지원한다. 최대 출력이 충전기의 10분의 1에 불과한 USB 단자에 연결하면 충전 속도가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소형 주변기기는 USB 단자로도 충전 '무난'
그렇다면 USB 단자로는 어떤 제품을 충전하는 게 적합할까. 사무실 책상 위에서 보일 만한 제품들의 충전 속도를 알아봤다.
무선 이어폰은 대부분 USB 단자로 충전해도 괜찮다. 애플 에어팟 프로 라이트닝 버전의 정격 전압은 5V, 정격 전류는 0.4A로 2W 속도로 충전된다. USB 2.0이나 3.0 중 아무 단자에 연결해도 최대 속도로 충전할 수 있다. 삼성 갤럭시 버즈 2 프로의 충전 속도도 최대 2.5W로 USB 버전에 신경 쓰지 않고 연결하면 된다.
키보드나 마우스도 USB 버전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유선 제품은 소비전력이 매우 낮고, 무선 제품도 대부분 소비전력이 2W 이하다 보니 USB 2.0 단자에 연결해 충전하면서 사용해도 무방하다.
계절가전은 종류에 따라 사용 여부가 갈린다. 배터리가 내장된 소형 탁상용 선풍기는 대부분 5V 1A 충전기로 충전하게끔 설계됐다. 즉, 권장 충전 속도는 5W다. 선풍기를 켠 채 USB 2.0 단자에 연결하면 충전 속도가 권장량의 절반으로 떨어지므로 배터리 잔량은 천천히 감소한다. 사용 시간은 조금 늘지만 주기적으로 전원을 끄고 충전해야 한다. USB 3.0 단자의 출력도 기본 충전기의 90%에 불과해 장시간 사용하면 선풍기 배터리가 소진되면서 전원이 꺼질 수 있다.
탁상용 온풍기나 발열 패드는 소비전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USB 단자로 충전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소비전력이 높은 제품은 220V 콘센트에 꽂아 사용하며 USB 연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무선 충전기도 USB 단자에 연결하긴 부적합하다. 탑재된 무선 충전 기술에 따라 5W, 7.5W, 10W, 15W 등 출력이 달라지는데, USB 3.0 단자로도 5W 무선 충전기에 전력을 제대로 공급하기 어렵다.
정리해 보면 USB 단자는 자잘한 전자제품을 충전하거나 사용하는 데 적합하다. USB 2.0 단자는 출력이 낮기 때문에 충전이나 데이터 전송 속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키보드·마우스를 연결하는 게 좋다. 특히 무선 제품이라면 USB 3.0 단자보다 2.0 단자가 안정적이다. USB 3.0 단자는 무선 신호에 간섭하는 파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충전기가 없다면 USB 단자로...스마트폰 완충 소요 시간은?
사무실에 충전기가 없어서 컴퓨터 USB 단자로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한다면, 충전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고려해 일찍 꽂아두자. 스마트폰이 완전히 충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내장 배터리 용량과 충전 기술, 현재 배터리 잔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출력이 가장 낮은 USB 2.0 단자로도 퇴근 전까지 스마트폰을 완전히 충전할 수 있을지 테스트해봤다. 갤럭시S23 울트라의 배터리가 15% 남은 상태로 USB 2.0 단자에 연결했더니 충전이 완료되기까지 6시간 56분 남았다는 알림이 떴다. 전력 테스터기로 측정한 결과 USB 2.0 단자 출력에 맞게 5V 0.5A로 충전되고 있었다. 출근 직후 충전을 시작하면 퇴근하기 전에 완전히 충전할 수는 있다.
동일한 상태에서 45W 출력을 지원하는 충전기에 연결했더니 예상 소요 시간은 1시간 5분으로 나타났다. USB 2.0 단자보다 6배가량 빠른 셈이다. 이론상 최대 출력만 비교한다면 충전기의 충전 소요 시간이 USB 2.0보다 18배 빨라야 하지만, 배터리 잔량이 증가할수록 충전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차이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