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보다 대기업에 먼저 플랫폼법 협조 구한 공정위

플랫폼 경쟁 촉진법 제정을 위해 업계 의견을 청취하겠다던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사자가 소속된 단체보다 대기업 단체에 먼저 협조를 구하고 다녀 논란이다. 공정위가 규제 대상이 아닌 대기업을 만나 법 추진 협조를 부탁하면서 '업계와의 소통과정을 면피하려는 것'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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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자료:연합뉴스]

19일 플랫폼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17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났고, 18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신년 간담회를 갖고 플랫폼법에 대해 협조를 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도 만났다.

경제단체와 만남에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의 제정 취지와 내용,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기업들이 법 제정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제단체에서 적극 협조해달라”라며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소통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플랫폼 경쟁 촉진법은 공정위가 매출과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주요 온라인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자사우대·최혜대우·멀티호밍·끼워팔기 등을 규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구글, 메타, 애플, 틱톡 등의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규제 하겠다는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다.

플랫폼 경쟁 촉진법이 제정되면 포털 분야로는 네이버와 메신저 분야로는 카카오, e커머스 분야에서는 쿠팡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매출이나 이용자 규모가 큰 플랫폼 기업들이 공정위의 플랫폼 경쟁 촉진법 규제 대상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해당 법 제정을 위해 업계와 소통하겠다면서, 정작 이들이 소속되있지도 않은 경제6단체를 만나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심지어 e커머스 분야에서 쿠팡은 경제6단체에 소속된 대기업들과 직접 경쟁 구도다.

지난달 12월 말부터 플랫폼법을 추진한다고 밝힌 이후 공정위가 벤처기업이나 플랫폼 기업 등을 만나 규제 도입 취지에 공감대를 만든 만남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기업과 주요 벤처기업들이 모인 '디지털경제연합'은 지난 9일 공정위와 플랫폼법 간담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공정위가 법안 공개를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정부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 지난 18일 긴급 간담회를 통해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단체를 만나 업계 의견을 청취한 정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벤처와 IT업계 목소리를 직접 듣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경영적 어려움에 봉착할지 고민했는지 미지수”라며 “경청하는 정부가 아닌 꽉막힌 불통 정부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플랫폼 경쟁 촉진법에 대한 비판은 IT벤처업계를 넘어 입점 판매자와 소비자 단체로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정책 감시단체 '컨슈머 워치'는 지난 9일부터 입법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16일 2000명 이상 소비자가 서명했다고 밝혔다.

국내 1500곳의 중소 플랫폼 판매자들로 구성된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도 이달 입장문을 내고 “규제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쇠퇴하면 폐업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도 밝혔다. 미국 정부에서도 플랫폼법과 관련해 공식 우려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도 이날 2024년 혁신벤처업계 신년인사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플랫폼 경쟁 촉진법'이라는 형태로 크게 주제를 만들어 플랫폼으로 묶어 집합적으로 규제하는 건 부담”이라며 “규제가 먼저 생기고 기업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많으니 원점에서 재검토해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디지털경제연합 소속 단체들이 플랫폼 경쟁촉진법 세부내용 공개를 요구한 만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내용이 확정되면 이후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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