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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1986년 9월 5일 열린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우수기술개발 유공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다시 허리끈을 졸라 맵시다.”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 기본방향 보고를 호평 속에 끝낸 과학기술처는 후속작업인 실천방안 수립을 서둘렀다. 장기계획 기본방향에 대한 과학기술계와 언론 반응은 좋았다. 언론은 사설이나 칼럼 등을 통해 과학기술 미래상에 남다른 기대감을 드러냈다. 과학기술처 직원들에게 몸은 피곤해도 기분 좋은 1985년 연말이었다.

1986년 새해가 밝자 전두환 대통령은 1월 7일 오후 8개 부처 장관과 2개 처 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예상하지 못한 개각이었다. 개각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김만제 재무부 장관을 기용하고 과학기술처 장관에는 전학제 한국과학기술원장(현 KAIST)을 임명했다.

전학제 신임 장관은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1952년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첫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뮌헨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해외 우수 한국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에 따라 귀국했다. 이후 국립과학관장, KAIST 교수를 거쳐 1984년부터 KAIST 원장으로 일했다.

그해 1월 31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전학제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선진조국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회기적인 발전이 가장 중요하”면서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차질없이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이어 “과학기술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며 “과학기술대학을 과학영재 교육 중추기관으로 하고 과학고교와 KAIST 등과 연계해 발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전학제 과학기술처 장관은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술계열별 5대 중점사업과 2대 기반사업을 설정하고 범부터 차원 '2000년대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알차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그해 3월 13일 청와대 회의실에서 1986년도 제1회 기술진흥심의회가 열렸다. 심의회는 이날 과학기술처가 제출한 '2000년대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 실천방안(안)'을 심의 확정했다. 심의회는 이와 함께 사업별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민관합동 장기계획 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또 부분별 실천계획 수립을 위해 사업별 추진협의회와 중점추진 분야별 작업반을 운영키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즉각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먼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상공부, 체신부, 국방부, 문교부 등 10개 부처 차관보급 인사와 산업계, 학계, 연구계 대표 등 30명으로 매머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원장은 권원기 과학기술처 차관이, 부위원장은 홍성원 청와대 과학기술 비서관이 맡았다. 간사는 최영환 과학기술처 기술정책 실장(전 과학기술처 차관)과 KAIST 이종욱 기술경제연구실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그해 3월 중순. 전학제 과학기술처 장관은 장기계획 추진협의회 위원과 분야별 연구책임자 등에게 위촉장을 주었다. 7개 분야 중점추진 협의회와 작업반에는 모두 238명이 참여했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 대표로 이용태 한국데이터통신 사장( 전 삼보컴퓨터 회장)과 채영복 한국화학연구소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박긍식 한국동력자원연구소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조완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전 교육부 장관) 등 쟁쟁한 인사들이 활동했다.

과학기술처는 또 관계부처 차관보와 민간 전문가 1명을 중점추진 사업별 추진협의회 공동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분야별 민간위원장은 △정보산업 분야 이용태 한국데이터통신 사장 △에너지자원 분야 박긍식 한국동력자원연구소장 △재료관련 기술분야 채영복 한국화학연구소장 △산업요소 기술분야 김훈철 한국기계연구소장 △공공복지 기술분야 심응기 국립환경연구소장 △인재양성과 기초연구 분야 조병하 KAIST 교수 △투지확대와 과학기술 기반 분야 김영우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을 선임했다.

과학기술처는 작업반을 가동해 4월까지 중간보고회를 개최하고 그해 5월 1차 시안을 작성했다. 이어 7월까지 모두 12회에 걸쳐 15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문가 검토회의를 개최했다. 그해 8월 토론과 이견을 해소해 최종안을 작성했다. 최종안 작성까지 모두 523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권원기 과학기술처 차관의 말.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기본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추진방법으로 인력, 중점추진 분야, 투자재원, 연구개발체계, 연구개발 활동과 접근 방법 등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또 중점추진 분야를 선정하고 이 사업을 담당할 고급인력 15만명을 양성하며 2001년까지 과학기술 연구개발투자를 국내총생산액(GDP)대비 3.1% 이상 높여 기술개발 지원제도를 크게 개선했다. 이 장기계획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지혜와 땀을 합한 결정체였다.”

그해 8월 26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과학기술처 등 10개 부처 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이 개각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에는 이태섭 정무제1장관이, 체신부 장관에는 이대순 민정당 국회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MIT 공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민정당 국회의원과 정무 제1장관을 역임했다.

그해 9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1986년도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 실천방안'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노신영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과 국회와 정당 대표, 과학기술계, 산업계 대표 등 240여명이 참석했다.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보고를 통해 “1987년부터 2001년까지 15년간 총 54조원의 과학기술 연구개발비를 투입, 정보산업과 재료 관련 기술, 산업요소 기술, 에너지 자원기술, 공공복지기술 등 5대 중점추진 분야와 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기반 사업 등 2대 기반 사업을 추진해 세계 10위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 “정보산업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 2001년 세계시장 점유율 목표를 컴퓨터는 10%, 반도체 기억소자는 20%로 정해 국가기간전산망과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1가구 1전화 시대를 실현하며 연구개발비 11조6200억원을 투입해 지능형 컴퓨터와 자연어처리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256M D램, 위성통신기술 등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재료 관련 기술 분야는 연구개발비 8조6900원을 투입, 생명공학과 신소재 분야 관련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재료공학센터, 생명공학연구소 등을 설립하며 신소재 전문연구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어 “15조3100억원을 투입, 핵심부품 기술 등 산업요소 기술을 개발하고 에너지와 자원기술을 선진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과학기술 개발은 우선 순위에 따라 개발과제를 엄선, 인력과 재원을 집중 투입해 그 성과를 극대화하라“면서 “수입에 의존하는 주요 부품과 신소재를 이른 시일 안에 국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우리가 개발한 전전자교환기 등은 기업과 학계, 연구소 등 산학연이 협력한 좋은 사례”라며 “과학기술 분야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학연 협동체계를 강화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이날 확대회의에서는 럭키중앙연구소(현 LG화학기술연구원)가 개발한 무공해 농약 등 19건의 우수기술개발사례를 발표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수기술개발에 공이 많은 이회림 동양화학공업 회장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전전자교환기 개발 유공자인 서정욱 한국통신공사(현 KT) TDX사업단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는 등 우수기술개발 유공자 14명에게 훈장과 포장을 주었다.


이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은 기본방향에서 실천방안까지 수립하는데 1년 3개월여 걸렸다. 이 계획은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