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은 나쁜 것인가. 19세기 후반 미국은 산업이 발전하며 석유 수요가 급증했다. 록펠러는 스탠다드오일을 설립해 석유공급에 나섰는 데 품질향상에 그치지 않았다. 경쟁기업을 무자비하게 인수하고 파산시켰다. 생산·유통망을 장악하고 가격을 통제해 부를 쌓았다. 국민은 불안했고 언론은 비판을 쏟아냈다. 의회는 반독점법(셔먼법)을 입법하고 법무부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스탠다드오일을 34개 회사로 분할했고 록펠러 제국은 무너졌다. '경쟁을 부당하게 제거하고 가격을 통제'한 대가였다.
1970년대 상황이 변했다. 미국은 경기침체와 물가급등에 직면했다. 기업에 숨통을 열어주되 '소비자편익 침해' 여부를 반독점 기준으로 삼았다. 좋은 독점은 경쟁업체 진입을 부당하게 막지 않는다. 오히려 비효율적 기업 진입이 억제된다. 인수합병은 부실기업 정리 및 시너지 증대를 위한 혁신수단이다. 가격인상과 생산량 감소가 없으면 독점 폐해가 없다. 이후 반독점법의 집행은 멈추거나 느슨해졌다.
20세기 후반 인터넷과 세계화로 실리콘밸리 기업이 글로벌경제를 견인했다. 플랫폼을 통해 가격을 낮춰 소비자편익을 높였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 광고를 보는 등 조건을 충족하면 무료상품도 많다. 그런데 공급, 유통, 배송업체, 소상공인, 근로자와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하원 조사결과를 보자. 플랫폼은 참여업체, 소비자의 의존도가 높은 승자독식 시장이다. 소셜미디어, 검색, 광고 등 사업이 집중돼 있다. 플랫폼 이외 기업 활동과 혁신을 떨어트린다. 데이터 활용으로 사생활 위험이 높다. 언론을 예속시킨다. 소비자편익을 높여도 '플랫폼 참여업체, 소상공인, 근로자 등 관계를 착취'하면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회는 2021년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플랫폼의 업체 차별 금지),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플랫폼의 부당한 기업인수 제한), 플랫폼 독점 종식법(자사 우대 및 경쟁사 배제 금지), 호환성 및 경쟁증진법(진입장벽과 전환비용 제거) 등 입법을 시도했지만 폐기됐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전쟁, 미·중 갈등을 고려한 부득이한 선택이다. 반면에 유럽은 디지털서비스법, 디지털시장법을 입법해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도입했다. 미국 중심의 디지털시장을 견제하고 회원국 중심의 유럽시장을 키우기 위한 결정이다.
플랫폼은 많은 손실을 감수하며 투자를 감행해 규모를 키운다. 상품 등 제휴업체가 몰릴수록 편리하다. 택시를 찾아 배회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을 열어 호출하면 된다. 검색을 이용하면 상품, 서비스, 맛집, 모임, 전문지식 등 찾지 못할 것이 없다. 소비자편익이 높아지고 거대 플랫폼만 살아남는다. 그게 나쁜가. 다양한 분야에서 융·복합을 거듭하는 디지털시장을 임의로 획정해 규제하면 경제가 왜곡된다. 시장점유율 중심 독점 규제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엔 혁신도 공존에 의존한다. 디지털 상품은 공장에서 완제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충 모양을 갖춰 출시하면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성장한다. AI는 고객의 이용 활동 등 공동체의 공공, 민간 데이터를 학습재료로 쓴다. 공급, 유통, 배송업체와 근로자는 플랫폼 생태계를 탄탄하게 쌓아올리는 동반자다. 근로자는 AI에 의해 점차 대체되지만 실력부족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양보다. 상생해야 마땅하다. 소비자편익을 우선하되 반독점 판단기준이 달라야 한다. 공동체 자산을 공정하게 이용하는지 봐야 한다. 경제주체의 탈락은 시장붕괴를 가져온다. 참여업체와 소상공인, 근로자에게 적합한 역할, 대우, 보상이 있어야 한다. 투자, 소비로 이어져 경제 생태계에 재투입할 수 있는 수준인지 중요하다.
플랫폼 생태계의 가치를 함께 만들고 혜택을 고루 나누는 '상생의 공존규제'가 독점규제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